그녀는 현모인가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로서, 무언가 특별한 자녀교육법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신사임당 살아생전 자녀교육과 관련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굳이 기록을 찾자면, 율곡이 신사임당을 기리며 쓴 <선비행장>에 등장하는 일곱글자이다.
“子女有過則戒之”
율곡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고하며 <선비행장>을 지었는데, 7백여자로 구성된 그 글에서 자녀교육과 관련된 글은 단 일곱글자뿐이다. 그마저도 특별한 자녀교육법이라 할 수 없다. 자녀가 잘못하면 즉시 꾸짖었다는 것이 다이다.
<선비행장>의 99프로의 내용은 어머니의 성품과 효심, 그리고 개인생활과 재능이다.
어릴 적부터 천재로 불리었던 율곡의 시선에서 어머니는 인품이 좋으며, 재능이 뛰어났던 인물이었다.
신사임당이 현모로 불리는 까닭은 그 자녀들이 성공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셋째아들 율곡은 더이상 설명할 것도 없으며, 큰딸 매창이나 막내아들 이우 역시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시서화로 명성을 남겼다. 일곱 남매 중에 세 자녀가 큰 명성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네 명의 자녀들은 어떠할까. 신사임당이 현모로 불리우는 까닭이 그 자녀들의 성공이라면, 나머지 자녀들의 아웃풋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신사임당의 큰아들 이선은 마흔이 넘어서야 과거에 급제했다. 동생 율곡이 남긴 글에서도 형님의 노력에 비해 성취가 약해 아쉬웠다는 표현이 나온다.
과거급제야 개인의 역량이니 그렇다쳐도 이선은 서른이 넘어서 혼인했는데, 신사임당이 죽을 때 이선이 28세였으니, 신사임당은 큰아들의 혼사로 치르지 않은 채 눈감은 것이다. (사견으로 신사임당은 어째서 큰아들의 혼사도 준비하지 않은 것일까 생각해봤다)
둘째아들 이번은 평생 과거시험에 합격한 기록이 없으며, 심지어 율곡의 제자들에 의해 그의 성품이 오활하다는 등의 기록에 남아있다. 스승의 형님이기에 가급적이면 좋게 표현했을텐데, 그 성품이 얼마나 안 좋았을까 생각해본다.
막내아들 이우 역시 진사시에만 합격했고 문과에는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았을지 몰라도 학업적으로는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없다.
신사임당의 세 딸 중 매창을 제외한 두 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시대 여성이라도 재능이 특출하거나 했더라면 기록에 남겨졌을텐데, 두 딸은 그저 평범했던 것 같다.
즉 신사임당의 7남매의 모습을 보면, 신사임당의 자녀교육에 탁웠했던 현모의 이미지는 특별히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율곡만 해도 그렇다.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날 때 율곡은 16세였고, 그가 문과에 급제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29세였으므로, 신사임당이 율곡의 공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의문스럽다.
즉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거슬러 올라가도 신사임당이 과연 현모가 맞는지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신사임당의 현모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일단 신사임당 생존당시에는 현모의 이미지가 전혀 없었다.
아들 율곡의 사후 율곡의 제자들에 의해 현모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율곡의 제자 김장생은 <율곡행장>에서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고 기록했다. 이 기록은 이전까지 한번도 알려진 적이 없었는데, 김장생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그리고 김장생이 이 기록을 남긴 뒤 이는 기정사실이 되며 후대에 더욱 풍성하게 기록되었다.
율곡의 사후 처음 알려진 율곡 태몽은 이후 신사임당의 태교와 자녀교육법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생긴 현모의 이미지는 근대시기와 해방 후 1970년대에까지 더욱 풍성하게 발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신사임당을 현모로 믿고 있으며, 이제 신사임당은 과열된 교육열의 근거로까지 작용하게 되었다.
앞서 인용한 글
평범한 한 주부는 “솔직히 신사임당의 아들이 율곡이 아니라 망나니였으면 아무리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인정을 받거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어요? 가뜩이나 아이들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이고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게 엄마의 평생 숙원 사업인데 신사임당을 매일 보는 지폐에 담는다는 건 자식 사교육 잘 시켜 명문대 보내라는 소리 아닌가요?”라며 교육열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어머니로서 교육가적 이미지가 강한 신사임당을 5만 원권에서 보면서, 여성들은 생각할 것이다. 자식 교육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신사임당의 교육가적 이미지는 허상이다. 그녀는 살아생전 자녀교육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천재적인 아들 율곡의 시선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던 사람이었다.
현대에 와서 자녀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신사임당이 자녀교육을 위해 모든 걸 헌신했다는 잘못된 인식은 바로잡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