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Oct 20. 2020

오늘 나를 구한 것

새로 이사갈 집의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다. 대리석 바닥을 뜯어 마루 바닥으로 교체하고, 벽의 온갖 몰딩들을 제거하고, 천장을 뜯어 에어컨을 매립하고, 욕실을 확장하고, 주방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바꾸며, 현관까지 손보는, 그야말로 올리모델링 공사이다. 억에 가까운 공사 금액이 들어가는지라 업체 선정부터 매우 신중했고, 지금도 결정할 사항들이 너무 많아 머리가 어지럽다. 남편은 뭐든 나 좋은대로 하라는 아주 허용적인 사람인데, 그것이 지금은 무척 버겁게 느껴진다. 공사 시작 전에는 공사에 반대하는 입주민이 꽤 있어 일일이 찾아가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 역시 당연히 전업인 나의 몫이었다.


거기다가 전에 살던 세입자분과 남편이 대화가 안 되었는지 정말로 그 세입자분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이사날짜부터 전출신고에까지, 잡다한 소음이 너무 심하다. 큰 금액의 대출을 감당해야하는 남편은 세입자 때문에 너무 방해받고 있다고 말하고, 세입자는 남편의 처사가 너무 매정하다며 내게 전화해 하소연을 한다.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나는 중간에서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다시는 이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 주위에 하소연을 하면 이런 경우는 처음본다며, 내가 '재수없는' 상황에 걸린 거라 말하는데, 어쨌든 이렇게 큰 이사가 처음인 내게 이사는 좋지 않은 기억이 될 것 같다.


거기다가! 나는 5세, 3세 두 아이를 가정보육 중이다. 두 아이와 함께 그 모든 걸 하는 게 나로서는 정말 너무 어렵다. 작년 이맘때쯤 지금의 이사를 계획하면서, 최소한 첫째는 기관에 가 있을거고 운 좋으면 둘째도 9월부터는 기관에 보낼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그러면 나는 홀가분하게 리모델링 준비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여전히 하루종일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다. 오전에는 이모님이 오시지만 나가서 볼일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정도이다. 오늘 리모델링 업체 소장님과 상담을 하는 데만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후는 아이들과 외출을 한다.


지난 금요일에는 웨건에 두 아이를 태우고, 걸어서 이십분 정도인 근처 '김광석 길'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더니, 남편이 "왜 그런 짓을 했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남편이 왜 그렇게 말하나 싶었는데, 돌아오는 길.. 나 역시 '내가 미쳤지' 하고 생각하게 됐다.


어제 월요일에는 차를 끌고 나가 마트와 근처 공원을 산책했는데, 나는 드디어 멘붕 상황에 빠졌다. 물론 그동안도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가까스로 정신줄은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신줄까지 놓을만한 상황이 갑자기 훅 들어온 것이다. 낮잠을 자지 않아 정신이 혼미해진 첫째가 갑자기 차가 다니는 길을 향해 돌진했고, 둘째는 형아를 따라 뛰어갔고, 나는 두 아이에게 "거기 서"를 미친듯이 소리지르며 따라뛰었다. 5세, 3세의 달리기가 그렇게 빠를 줄은 나는 정말 몰랐다. 힘들게 두 아이를 잡은 뒤, 나는 온힘을 다해 화를 냈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 둘에게 계속 주의를 주었다. "엄마가 곧 화가 날 것 같으니까 조심해"라는 말을 수번을 했다. 아침에 기저귀에 응가를 하고 씻으러 가기를 거부하는 둘째에게 시간을 좀 주었는데, 그 사이 둘째는 그 응가 기저귀에 손을 넣어 장난을 치고, 그 손을 이불에 닦았다. 유독 위생 관념에 민감한 나는 정말 분노가 일었다. 억지로 참아냈지만, 그 냉기를 아이들은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의 거친 손길이 서운했는지 엉덩이를 씻는 내내 둘째는 울었다. 오늘은 나 스스로에게 계속 다짐했다.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내 보자고...


그런 나의 하루를 구해준 것은, "막대사탕, 작은 젤리 세 팩, 사탕 두 개, 초코릿이 담긴 요거트"였다. 아이들이 과격해질 때마다 나는 그냥 단 것들을 들이밀었다. 그것들에 정신을 잃은 아이들은 온순해졌고, 내가 화낼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집에 와서는 그냥 뽀로로를 틀어주었다. 뽀로로를 틀면, 마치 마취총을 맞은 마냥 아이들은 다루기가 쉬워진다. 뽀로로를 보면서 내가 원하는만큼 든든히 저녁도 먹였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아이 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위축된다. 왜이리 유능하지 못한 엄마인지 자책감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그 속상하고 슬픈 마음은 더욱 심하다. 그러니 덜 아픈 선택을 한 것인데, 당연히 개운치는 않다.


오늘 그런 나를 구해준 말 한 마디도 있다. 지인과의 잠깐의 통화에서 내가 마트에 두 아이와 간다는 이야길 했더니, 그 지인이 "왜 그런 모험을 하는거야?"라고 했다. 두 아이와 마트에 가는 일을 '모험'이라고 말해주는 그 언니에게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게 모험이 맞는거죠? 나만 힘든 게 아니죠?" 라는 내 말에 "당연하지, 나는 그맘때 둘 데리고 마트 안 갔잖아"

그래 그거면 됐다. 나만 이렇게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이 조금 지켜지는 기분이었다.




요즘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있다. 아직 완전 초반부에 머물기에 뭐라 말할 순 없지만, 큰 위로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정혜신님은 나의 감정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정신력이 약한 사람인가봐. 지금 내 상황이 나쁠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왜 답답하기만 한지 모르겠어"

다행히 남편은 "둘째가 한시도 못 떨어지는데 당연하지. 나라도 답답하겠다"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엄마가 자기 아기를 답답해하면 어떡해. 그러면 엄마도 아니지. 나는 너무 모자란 엄마인가봐"


나는 늘 그랬다. 감정은 귀기울일 대상이 아니라 극복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울한 감정, 화나는 감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그 이유를 물어 관심을 가져 줄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이므로 극복할 대상으로 여겼다. 지금 쓰고 있는 여성 인물들의 글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일군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모두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그것을 잘 다루고 극복한 결과, 성공이란 걸 이루어냈다. 이것은 나의 가치관과 거의 일치했다.


사실 이 글들은 내가 서른즈음에 쓴 글인데, 십년 가까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쉬워 부분 수정을 통해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서른의 나와 마흔을 앞둔 나 사이의 큰 간극만큼 그간 내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 사실 이 글을 올리면서도 마음 한 켠이 찜찜하다. 그렇게 모든 걸 극복하고 일구어낸 성공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대학원 석사 전공은 심리이다. 내가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파견근무가 가능한 전공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그다지 유용한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공부하는 중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못했다. 나는 석사지도교수님께 큰 실망을 안겨드리고, 박사 전공은 철학으로 바꾸었다. 심리라는 학문은 따로 공부할만큼 중요한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굉장히 유용하고 중요한 학문이라 생각했다. 공자가 인생을 제대로 사는 법을 알려줄 것 같았고, 노자가 말하는 인생사도 일면 좋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소 상반되는 철학적 인식도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많은 깨달음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니체의 철학은 단번에 인생에 대한 통찰을 안겨줄 것만 같기도 했다. 그렇게 심리는 다스리고 극복하면 되는 문제라 여겼고, 인생사의 현명한 답을 찾아 내는 철학이야말로 매우 유의미한 학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서 이런 나의 생각은 많은 부분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내 감정을 전혀 이해할 줄도, 어루만질 줄도, 다룰 줄도 몰랐다. 그동안은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에, 연습할 필요나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런 나의 감정에 대한 소홀한 인식은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되었다.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루지 못하니, 엄마의 감정의 온도에 따라 아이들 역시 온탕과 냉탕을 왔다갔다해야했다. 또한 아이들 역시 공감이란 걸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왜 "심리"라는 학문이 그토록 중요하게 탐구되는 분야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직은 내가 심리라는 학문에 대해 무어라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제 겨우 그것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뿐이다. 다만 정혜신님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줘본다. "내가 답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옳은 감정이다. "엄마가 아이를 답답해하면 안 된다"라는 명제가 옳은 것이 아니라, 내가 답답하다고 느낀다면 그 감정이 옳은 것이다"


이제는 내 감정을 봐주고 싶다. 어루만져주고, 다독거려 주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타인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 이렇게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가보다. 이십대 때는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그것이 나를 구해주는 책이라 여겼는데, 삼십대의 말미에서는 내 감정을 토닥여주는 책을 읽으며 구제를 받고 있다.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온전한 진실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변하고 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내가 더 온전한 사람으로, 행복한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나를 구제해 준 것들, 절대 옳은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 사탕과 미디어에 감사하며, 그리고 지인이 전해준 그 말 한마디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버텨낸 나를 다독이며.



  




매거진의 이전글 잠시 다녀온 pari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