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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22. 2020

결이 맞는 사람들과의 시간

오늘 친정에 간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친정엄마가 아들 둘을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 주시면, 텔레비전이 무척 고팠던 나는 아무 채널이나 되는대로 틀어서 보는데, 오늘은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이 당첨되었다. <동주>와 <덕혜옹주>가 주제였는데,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역사는 좋아하는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더이상 채널을 돌리는 시간낭비를 않고, 그것만 초집중해서 삼십분 정도를 봤다. 보는 동안 눈물도 뚝뚝 떨어졌다.


<동주>라는 영화는 내가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이다. 첫째 출산 전이었는데 왠지 그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할 것 같아서 만삭의 몸으로 영화관을 갔다.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쿨쿨 잠을 잤다. 남편 말고 나의 다른 쪽에 앉은 모르는 남자는 나와 같이 눈물을 훔쳤다. 그때 자고 있는 남편이 아닌 눈물을 흘리는 그 모르는 남자와 함께 영화를 보러 온 느낌이었다. 물론 그 남자의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그저 나와 같이 울고 있는 그 남자가 참 고마웠다. 나와 같은 지점에서 눈물을 흘려주는 것만으로 무언가 든든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꼈다.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영화를 쓴 감독, 최태성 강사, 그리고 그 영화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마음이 풍성해졌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인에 대해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그 기쁨은 참으로 소중하고 따듯했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눈 듯도 했다.

<덕혜옹주>라는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을 최태성 작가가 딱 꼬집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 영화가 주는 의의나 시사점에 대해서 나도 그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보태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 내가 잘 아는 인물, 내가 나누고 싶은 사람에 대해 그렇게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비록 일방향의 소통인 텔레비전이었지만, 나는 잠시나마 충분히 포만감이 들었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시간이 많았다. 국어교사인 내가 1정연수를 받는 그 한달은 정말로 행복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4년차의 젊은 국어교사들이 모여 하루종일 같이 공부하고, 함께 문학기행을 떠났다. 통영으로 떠난 문학기행은 정말로 행복했다. 통영에서 백석의 사랑이야기를, 박경리를, 유치환을 나누었다. 팔공산의 맑은 공기가 가득한 밤, 별이 쏟아질 듯한 그 밤, 소설가 황석영 선생님을 만났던 그 날도 잊을 수 없다. 그 감동을, 그 가슴 떨림을,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 시간들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왈칵 날 것만 같다.


이후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꽤 고리타분하게 느껴졌을 선비정신에 대해, 그리고 각종 철학사상들을 탐독할 때, 그것을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그 학문을 같이 느꼈던 순간의 든든함을 기억한다. 여성사 학회에 참석할 때면, 변방 중의 변방의 학문인 여성사를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깊은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교수를 하시는 선배연구자들은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절대로 생업은 놓지 말고 연구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여성사라는 학문이 배고픈 학문이라고, 명맥이 끊길 것 같은데 그 길을 가려는 후배가 고마우면서도 배고프지 않았으면 하는, 선배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부터 나는 학문을, 내가 좋아하는 영역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함께 플라톤의 이데아를 논하며 감동했던 그 순간 역시 아득한 과거로 남았다. 당시 나는 박사과정이었고, 석사과정인 사람도 꽤 있었는데, 이제 그들은 박사논문까지 썼고 계속 학자의 길을 가지만, 나는 이제 학문과는 상관없는 그냥 "애엄마"일 뿐이다. 그 생각을 하면 때때로 아쉬운 생각이 든다.


변화된 내 상황 속에서 지금의 나와 결이 잘 맞는 사람들도 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육아의 힘듦에 깊이 공감해주는 그녀들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즐거이 버티어 낼만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허기진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해지면서 결이 맞는 사람과 있을 때 더욱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결이 맞는 사람의 존재는 살아가는 데 정말 소중한 것이다. 오늘 <방구석1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난 그 사람들과의 시간이 참 따스하고 한편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고, 함께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대리만족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대신 조그마한 내 아기가 찬란한 가을 거리를 엉덩이를 덩실덩실 흔들며 걸어다니고, 그러다가 뒤돌아 방긋 웃으며 내게 뛰어와 안기는 그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살아야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자기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나의 아기에게 이제는 돌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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