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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pr 01. 2021

먹는 즐거움

어제 저녁의 과식으로 심한 소화불량을 겪었다.

나는 원래 한번에 많이 먹지 못하는데다가, 오랜 다이어트 생활로 특히 저녁을 많이 먹지않는 습관이 있는데, 어제는 육아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다.


아이들 저녁을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저녁을 아주 양껏 챙겨 먹었고(왠지 배가 고프면 아이들에게 더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면서 또 고구마도 먹었고(아이들이 워낙 천천히 먹어서 할 일이 없어 내 입에도 무언가를 넣었다), 이후 냉파한다고 남은 과일을 모두 믹싱해서 갈아마셨다. 잘라놓은 파인애플 양이 엄청 많았는데, 남기기 애매해서 모두 갈았다. 내 몫을 먹고, 남편몫을 남겨두었다. 그만큼 먹었을 때부터 속이 더부룩할만큼 배가 가득찼다.


그런데 남편이 저녁 식사 후 파인애플주스를 마시지 않겠단다. 버리기 너무 아까워서 내가 다 마셔버렸다.


아침에 아이들이 밥과 국을 어정쩡하게 남기면 나는 남은 것들을 다 처리한다.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랑 외출해서 낮잠재우기 전에 꼭 간식을 먹이는데, 이때도 둘째가 남긴 빵이나 우유 등을 버리지 못하고 꼭 내 처리한다. 비싼 가방은 몇 번 들다가 질리면 손해보고도 잘 팔면서, 왜인지 그 남은 음식이 너무 아까워(또는 쓰레기통을 찾기가 귀찮아) 꼭 내 입으로 처리하고야 마는 것이다.


거기다 또 식사시간마다 내몫의 식사도 아주 양껏 먹었다. 그렇게 음식들이 쌓여진 내 뱃속은, 자려고 눕자, 도로 올라올 것 같이 도를 초과한 느낌이었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도 자야하는데, 토가 나올 것 같아서 누울 수가 없었다.


발바닥 마사지하는 공을 한참 굴렸다가, 아예 볼펜을 들고 발바닥을 찔러 혈을 자극하고, 남편에게 등을 두드리게 하고, 폼롤러로 온 몸을 자극하기를 한 시간여하자.. 시원하게 트이 나왔다. 살 것 같았다.


속이 더부룩했던 그 한두시간은, 머리가 어지럽고 울렁거리며 신물이 올라오고 토할 것 같았고, 속이 너무 답답해서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 몸이 어느 한 곳만 불편해도 이처럼 고통스럽다.

한 시간동안 온 몸을 마시지하고서야 숨을 쉴 공간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제 정말 대사량이 떨어졌구나.. 이런 소화불량을 겪을수도 있다니.. 나이를 탓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도저히 무언가를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아서, 아이들이 남긴 사과만 조금 먹고, 그 좋아하는 커피도, 아이들이 남긴 밥과 국과 반찬도 전혀 먹지 않았다.


둘째의 간식 타임에 둘째의 막대과자는 조금 얻어 먹었지만 둘째가 먹다남긴 마카롱은 먹지않았다. 먹다남긴 마카롱은 나중에 다시 너가 먹으라며 비닐에 넣어주었다. 그러고 둘째가 잠들자 허기가 느껴져 며칠 전부터 먹고싶었던, 외식 체인점의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아침을 굶은 탓인지, 먹고싶었던 것이여서인지, 아주 맛있다.


앞으로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으로 음식을 먹겠다고 결심해본다. 그리고 이제 심한 소화불량을 겪을 나이임을 받아들여본다. 이번 소화불량을 계기로, 최근 3키로나 찐 몸 되돌. 이제 곧 여름이다!



근데 왜이리 맛있냐.. 


음식이 맛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더 기쁜 것은, 허기가 느껴진다는 사실과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감각이 살아났음이다. 이제 살만하게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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