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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Mar 29. 2021

미세먼지 시대

미세먼지에 관심을 가진 이래로, 오늘 최악의 수치를 보았다.

내 미세먼지 어플에 따르면, 미세먼지 수치가 50이 넘으면 "나쁨", 75가 넘으면 "상당히 나쁨", 100이 넘으면 "매우 나쁨"이고, 150이 넘으면 "최악"으로 해골 표시와 함께 "절대 외출하지 마시오"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오늘 일어나서 확인해봤을 때가 400대로 이미 "최악"이었고,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500대, 700대.. 급기야 지금은 1145의 수치를 보인다.



400대의 수치일 때부터 아이를 기관에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수치가 떨어지겠지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먹이고 등원 준비를 했다. 하지만 수치가 떨어지는커녕 500대, 급기야 700대까지 오르자, 나는 마침내 등원을 포기했다.


사실 400대부터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미세먼지로 등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다른 일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또 3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기관에 이제 잘 적응했는데, 오늘 하루의 결석이 다음 결석으로까지 쉽게 이어질까봐도 걱정되었다.


거기다 유치원선생님들 보기도 다소 민망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학습을 강조하는 유치원으로 매일 과제가 나오는데, 3월 한달동안 다섯도 채 못해가서.. 이미 담임선생님께 몇 번이나 훈계를 들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겨우 미세먼지로 결석까지 하면, 나와 아이의 성실성까지 의심받을 것 같아 염려되었다.

또, 다른 워킹맘에게도 민망한 마음이었다. 나도 내년에는 복직을 해야하기에 아는 그 마음, 데리고 있고 싶어도 데리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의 다른 엄마와 아이들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결국 한 시간여를 고민했지만, 어쨌든 지금 내 상황에서의 최선의 선택은 오늘은 아이를 보내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고, 어렵게 유치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유쾌하지는 않으신 말투셨지만 요즘은 워낙 학부모의 의사가 존중되니 마침내는 그러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이 등원 고민이 해결되자마자 바로 친정아빠께 연락드렸다. 워낙 미세먼지에 무심 분이신데, 뇌경색 이력이 있으시다. 뇌경색에 미세먼지가 특히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기사를 읽은 후부터는 아빠가 더욱 걱정되었다. 아빠께 미세먼지가 정말 안 좋으니 외출을 삼가시라고 말씀드렸고, 그래서 첫째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아빠는 혼을 내신다. "그깟 미세먼지가 뭐라고 아이 유치원이 더 중요하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나는 초중고 12년 개근을 했고, 아무리 아파도 우선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을 직접 뵙고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책임감과 성실성을 배웠다. 그래서 오늘 첫째의 결석에 대해서도 1시간여를 고민하고 여기저기 인터넷을 찾아보며 고심한 끝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막연히 결석이라는 것에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사고방식도 변해야할 것 같다. 더이상 개근이 중요한 시대는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한다.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개근이 성실성의 척도는 될 수 없다는 것, 성실한 사람이 반드시 인생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 우리 부모님(세대)께 배운 '개근=성실성=성공=행복'의 공식이 맞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삶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 양적인 성장 이상으로 질적인 성숙이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들어 더 느낀다.


코로나를 겪 전까지는, 인생을 천년만년 살아갈 줄 알았다. 코로나 이전에도 미세먼지가 심했지만, 똑똑한 인간이 그것마저도 지배할 수 있는 날이 오진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다. 인류가 지금까진 오염 배출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획기적인 무언가가 발명되어 그것마저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오진 않을까 상상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나는 사실 분리수거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겨우 나 하나 분리수거 하는 일이 지구환경에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될까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이제라도  환경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한다는 생각이 다.


우리는 천년만년이 아니라, 당장 몇 십년 앞의 삶도 어찌될 지 알 수 없다. 우리 아이가 미래에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 준비하는 오늘을 는 일과 지금 당장 맘껏 웃으면서 행복한 오늘을 보내는 일 중, 무엇이 더 가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몇십년 뒤의 미래가 제대로 존재하기나할까 싶은 생각이다. 내 생각이 너무 과도할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드는 요즘이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고 다시 확인한 미세먼지가 1200대가 넘어가자, 헉 하는 마음과 함께 약간의 안도도 했다. 우습지만, 그래 안보내길 잘했다며, 내 결정을 합리화할 수 있을만한 수치였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저 뿌연 하늘만큼, 가늠조차 되지않는, 답답한 마음이다.


미세먼지 좋은 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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