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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pr 08. 2021

쓸데없는 이야기

저질 체력

나는 내 외모에 대해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이다. 166센티라는 적당한 키, 작은 얼굴, 길쭉한 체형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물론 말하자면 단점 엄청 많지만 이 나이에 굳이 내 외모의 단점까지 곱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유전적으로 치명적으로 물러받지 못한 게 있으니, 그것은 체력이다. 나는 정말로 저질 체력이다.


왜인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한약을 먹었다. 무슨 이유로 먹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가정형편이 좋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녹용까지 넣은 비싼 한약을 내게 먹게 하셨다. 나는 코를 막으면서 울면서 한약을 먹었다. 어린 나이에도 우리집 형편에 비싼 한약을 지어주신 걸 알았기에, 울면서도 기어이 먹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평균 전교 20등 전후라는 나름 훌륭한 성적을 유지했던 나는, 밤잠을 7시간은 자야 생활이 유지되었다. 당시 "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류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항상 내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전후였다. 그렇게 자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수능을 망쳤던 걸까?!)


대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았던 점 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거였다. 나는 평일에 평균 10시간이 넘는 수면은 물론이요, 낮잠까지 잤다(평일에도 여학생 휴게실에 가서 곧잘 잤다). 그 재밌는 엠티를 가서도 나는 열두시를 넘기지 못해서 가장 먼저 잠들었고, 그러고 아침에는 가장 늦게 일어났다. 그 때문에 한밤중에 일어나는 그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또 그 덕분에 늘 친구들이 차려놓은 아침밥상을 받을 수 있었(설거지는 내가 했다).  


교사가 되어서는 퇴근하고 8시 이전에 잠드는 날이 많았다. 나에게 열시에 하는 드라마는 당연히 못 보는 거였고, 8시반에 하는 일일드라마도 잠와서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자야지 다음날 활동이 가능했다.


그런 나에게 육아란... 잠과의 사투였다. 그래서 나는 첫째가 다섯돌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두 아이의 신생아 기간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신생아 때는 "정말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지만, 둘째가 31개월인 지금도 중간에 한두번은 깨기 때문에, 그러니까 만 5년동안 나의 수면의 질은 계속 좋지 않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정말 내 체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나의 하루는 정말 나쁘지 않다.

7:20 아이들 대체로 기상(아침형 아이들). 나는 침대에 더 누워있고 싶지만, 아이 둘이가 내 온몸을(특히 둘째는 내 얼굴 위에 누워있다) 치근덕대는 게 아파서 침대에서 나온다.

8시 대체로 이때 아침 준비를 마친다. 아침 준비라 해봤자 전날 만들어 놓은 국을 데우고, 후라이팬에 굽는 거 하나 하는 것 뿐이다.

8:30 가장 힘든 시간인 두 아이 밥을 따라다니면서 먹인다. 중간중간 책도 읽고 로봇놀이도 하면서 정신을 빼놓으면서 밥을 따라다니면서 먹인다.

9:10 먹은 것 뒷정리를 하고 유치원 갈 준비를 마친다. 주로 둘째 옷을 입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9:30 첫째를 차로 데려다 준다.

사실 이만큼만 해도 혼이 빠진다. 오늘은 아침 준비를 다 해놓고 먹이려는 찰나, 남편이 아침에 먹고 싱크대 위에 무심코 둔 단지우유통을 둘찌가 보고 자기도 먹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생략하고, 모든 소란이 끝난 뒤 드는 생각이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심장병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첫째가 등원을 마치면, 둘째와 나들이를 한다. 절대 바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않는다. 대체로 동네 야채가게와 자연드림, 놀이터 코스이고, 미세먼지가 안 좋은 날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간다. 어제는 수성못을 갔고, 오늘은 이마트를 갔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놀다가 이제 드디어 낮잠시간이다. 차로 재우는데 십여분 차를 돌면 아이는 자고, 그때부터 한시간여는 나의 자유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책을 읽거나 휴대폰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 쓸데없는 인터넷 서핑이다.


한 시가 되면 이모님이 오신다. 이모님 오시는 시간에 맞쳐서 둘째를 깨워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체로 둘째는 바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서 편의점에 가서 과자라도 하나 사서 들어간다. 그러면 1시 30분정도 된다. 지난 주까지는 2시에 첫째를 데리러 가야해서 둘째를 이모님께 인계하고, 나는 대충 점심을 먹은 뒤 바로 첫째를 데리러 나갔는데, 이번 주부터 첫째가 3시에 마치기에 한 시간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나는 점심을 천천히 먹거나 잠시 누워있으면서 체력을 보충다.


첫째를 집에 바로 데려오면 3시 30분쯤 되는데, 또 첫째도 어딜 들렀다오고싶어한다. 그러면 4시 30분쯤 집에 오는데, 오늘은 첫째가 유치원에서 다쳐서(ㅠㅠ) 소아과를 갔다가 성형외과를 갔다가(중간중간 아이를 꼬시기 위해 편의점도 가고 도넛도 사고), 정육점에 들러 고기까지 사오니, 5시에 집에 도착했다.


5시 아이를 씻기고 나도 씻고, 오늘은 점심을 먹지 못했던 내가 먼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6시 두 아이 밥을 먹이고 7시 남편의 밥을 주고 설거지만 대충 하고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오늘은 특히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했고(평소에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청소기 정도만 돌린다),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모님께서 둘째 점심은 먹여주시고, 아이들 먹을 저녁도 준비해주시니 나는 먹이기만 하면 된다. 중간중간 쉬는 타임도 있다. 그런데 왜 8시만 되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까? 그때 침대에 삼십분은 누워있어야 자기 전에 아이들 책 읽어줄 에너지가 생긴다.


그리고 이상한 게 아이들이 9시에 자고 나면, 나는 너~무 피곤한데 자고싶지가 않다. 그래서 쓸데없이 인터넷을 본다거나, 이렇게 쓸데없이 글을 쓴다거나 하면서 시간을 소비한다. 하지만 11시 전에는 자려고 노력하는데.. 난 왜 이리 피곤할까?




예전에 사주를 봤는데, 남편 사주를 보고 나에게 "이 사람에게 따뜻한 밥 꼭 챙겨주고, 옆에서 건강도 잘 챙겨주세요. 몸이 허약한 사람이에요" 하셨다. 그러고 내 사주를 보더니 "아이고, 이 사람이 더 하네. 이 사람은 정말 건강이 없다. 알아서 몸 잘 챙기세요"하셨다. 한의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하하

 

나의 이 저질체력은... 개선될 수 있을까? 숙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야하나? 진심으로 누구와 상담을 받고 싶을만큼..체력을 개선하고 싶다.


문득, 오늘 내 삶이 너무 힘든 이유가, 그냥 모두 내 저질 체력 때문인 것만 같아서.. 내가 우울한 이유도, 모두 이 저질 체력 때문 같아서, 내가 아이들에게 짜증내는 이유도, 그래서 오늘 첫째가 "엄마가 싫어"라고 말한 것도, 모두다 내 저질체력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싶어서.. 끄적끄적....곧 지울지도 모를 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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