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월 31일 본가인 용인을 떠나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에서 보내는 첫 달인 2월은 당연히 행복했다.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새로움에 대한 흥미부터 내 계획이 진짜로 실행되고 있다는 두근거림까지. 제주에 적응해 나가는 것 만으로도 즐겁던 시절이었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출근하는 것이 하나의 고난이었지만, 그때는 어두컴컴한 제주의 거리에서 맡는 새벽공기가 좋아 자동으로 눈이 떠질 때였다. 그렇게 혼자 올레길도 가고 사촌누나에게 빌린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질주하며 당시의 행복을 만끽했다.
하지만 이때의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4월 초, 화려한 제주의 벚꽃이 점점 제주의 거리를 수놓을 무렵 난 지쳐가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고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이 점점 질리기 시작하고 2월에 느꼈던 여유와 새로움은 줄어갔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될까?'하는 의심과 불안감만이 내 몸 구석구석에 전염될 뿐이었다. 다 포기하고 2학기에 복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때 쯤, 내 인생의 멘토 분께서 제주에 내려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복한 제주, 새로운 제주.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는 너가 만들어낸 허상 아니야? 어떻게 매번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어?” 멘토분의 말씀이 내 머리를 때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느끼고 싶은 행복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이 허상들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정말 잘못된 생활을 해왔구나, 싶었다. 항상 내 계획과 실천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 배워야 한다는 강박감을 지니고 있는 내 성격에 삼켜져 허황된 환상을 바랬던 나. 항상 아쉬움을 느끼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 이후 내가 제주에서 느끼고 싶은것이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우선 "마음을 비워야겠다" 라는 결정을 내렸다. 올해 1년 동안의 프로젝트를 통해 큰 깨달음, 혹은 배움을 기대하지 말자는 다짐. 어떤 행위나 상황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허황된 기대를 버려야 여유있게, 즐겁게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속의 여러가지에서 흥미로움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스쳐지나갔던 많은 존재들에 관심을 갖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제주의 풍경들을 세세히 관찰하거나 일터로 가는 15분의 짧은 길이라도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 등 최대한 천천히, 순간의 찰나들을 포착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건물과 숨겨져있던 아기자기한 자연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잠깐일지라도 그 순간은 내가 새로움을 접하게 된 시간인 것이다. 그때 부터 였을까? 거리를 걷다가도 꼭 한번씩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다. 반복되는 일상속에 약간의 예민함을 두어,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제주의 여러 곳을 노니며 지금의 7월까지 오게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다는 것. 남은 '1년 마음가는대로' 프로젝트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줄 하나의 장치를 찾은 것 같았고 올해 뿐만이 아닌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것이라 더욱 기뻤다. 이제 제주에서 보내게 될 나의 일상은 얼마 남지 않았다. 4월달 제주의 아름다운 벚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9월 부터 약 50일간의 큰 일탈과 즐거움이 내게 남아있기에 그리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새로움만이 펼쳐질 남은 '1년 마음가는 대로' 프로젝트는 현재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의 두근거림과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