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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온 결 Jan 20. 2024

전원주택에서 운전연수를 받다

베테랑 초보운전이 알아가는 세상

전원주택으로 이사왔다.

남들이 너무 부러워하는 주택이지만, 운전을 못하는 나에게 도심과 떨어진 이 마을이 너무 걱정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갑자기 먹을게 떨어지면 어쩌지? 시내에 나가야 하는데 버스가 없으면 어쩌지? 당장 수요일마다 진행하는 영어스터디를 하러 가야하는데 어떻게 나가야하지?      

운전을 하면 십분이면 뚝딱 도착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가려면 30분이 훌쩍 넘는다. 그 울퉁불퉁한 길을 작은 마을버스가 꿀렁꿀렁 거리며 달려 도착하면 속이 여간 미슥거린는게 아니다. 한번은 영어스터디 가는데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수업이 다 끝나 도착했다. 스터디 회원들은 이렇게 온게 어디냐고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그 속상함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 미리 배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은 여자강사로 꼭 알아보고 안전하게 배우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유튜브에 ‘미남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주차하는 방법이나 끼어들기 방법들을 숙지해 두었다. 영상으로남아 한번 예습을 해두어서 큰 사고들은 피하며 다니고 있다. 한블리의 ‘블랙박스’ 채널도 꼭 챙겨본다. 스스로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사고는 언제든 내 곁에서 일어날 수 있으니 항상 핸들을 잡으면 긴장하고 집중해야한다.      


나는 맘카페에서 다른 엄마들의 추천을 받아 나의 ‘드라이빙티처’의 번호를 알게되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돈부터 보내고 나중에 연락해 만나자 메시지를 받았다. 영수증도 없고 얼굴도 모르지만 꼭 해야한다는 절실함으로 송금 먼저 했다. 약속된 날에 그녀는 부드러운 치즈크림같은 아이보리색 차를 끌고 치즈크림보다 더 부드러운 핸들링을 자랑하며 우리집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시동을 켜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시동을 끄라고 했다. 운전연습을 해야하는데 왜 시동을 끄라고 하지? 첫 수업은 신호를 알려주는 수업이라고 했다. 엥! 이런걸 수업이라고 하는것인가? 나에게는 실전 수업이 너무 절실했는데 말이다. 첫 수업은 차 안에서 신호와 도로상황을 살피는 방법에 대해 듣고 끝났다. 혹시 사기아닌가 더 크게 의심을 했고 남편도 시동 한번 안켜고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다행이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걱정둥이 남편이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항상 내 걱정에 밖에서 술한잔 안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다. 바람이 불면 집이 날아갈까 걱정하며 전화를 하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계단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전화가 오고, 비오면 비 새지 않게 집단속 잘 하라고 전화가 온다. 어디 날아가지도 않을 콘크리트 집을 지어놓고 걱정을 해대는 남편. 나의 운전연수에도 어찌나 걱정을 하는지 남자 선생님한테 희롱 당하지 않게 여자 선생님만 가능하다고 신신당부하고, 엑셀 브레이크 헷깔릴까봐 또 신신당부, 동네 어린이보호구역 조심하라 이야기하는 잔소리 쟁이다. 그의 걱정을 뒤로하고 운전연수 첫 수업이 끝났다. 총 6번의 수업을 30만원으로 계약했다. 그 중 첫수업이 시동도 안켜고 끝났다. 다음 수업이 무진장 기다려졌다.

     

두 번째 수업은 근처 이마트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남편과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라 길은 너무 익숙했다. 예전 누군가 나에게 운전하는 것은 차를 모는게 아니라 길을 가는거라고 이야기했다. 길을 알면 기계를 움직이는 일은 그 다음이라고 말이다. 그 말이 맞다. 모르는 길을 가게되면 온 몸이 긴장헤서 도착해서 손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다. 그러나 이마트까지 너무 잘 아는 길이라 리드미컬하게 악셀과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안전하게 다녀왔다. 그렇게 한번 다녀온길은 이상하리만큼 편하게 느껴졌다.      


우리 마을은 공장지대를 지나 한적한 곳에 자리잡았다. 작은 도로는 추월하지 않아도 되는 일차선에 과속방지 턱이 계속 있어서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된다. 마음 편하게 천천히 달리면 되는 길이다. 다만, 공장들을 오고가는 큰 트럭과 레미콘 등등 공사차들을 꽤나 자주 만나게 된다. 커다란 차가 반대편에서 오면 위축되어 자꾸 쳐다보게 된다. 나의 드라이빙티처는 절대 상대방을 오래 바라보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나의 시선을 따라 차도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시선을 두는 곳에 몸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꽤나 낭만적이고 시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조언 이후로 나는 나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운전할 때 내 길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차는 참고 정도로 힐끔 보고 다시 내 차에, 내 길에 집중한다. 쓸데없이 나의 시선을 흘리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운전할 때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지속되었다. 더 아름다운 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것들은 남기지않고 바로 치우거나 없애버리며 나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다듬어 나가고 있다. 아이들 키우는 집에서 참 어려운 일이지만 지치지 않고 노력하려 한다. 가장 만만하고 작은 화장실부터 깨끗하게 치우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관 앞에 쿠팡 박스가 그득하다.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간 것처럼.      

 나는 귀가 얇아 친구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편이다. 친구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주위 환경에 많이 영향을 받은 ‘쉬운 여자’다. 다행이 주위에 좋은 친구, 멋진 연인들이 나를 훌륭하게 키우고 지켜줘서 여태 잘 살아온 거 같다. 지금의 남편도 산만한 나를 보디가드처럼 지켜주며 걸어다녔다. 운전할 때 역시 귀 얇고 많이 휘둘리는 나는 앞 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앞 차가 초보운전이면 나는 함께 길을 헤매며 간다. 잘 아는 길, 다 아는 신호임에도 버벅거린다. 반면 멋들어진 운전자를 만나면 멀고 지루한 길도 안전하게 바르게 도착한다. 신호에 걸려도 적당한 거리에서 브레이크를 잡아 미리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말이다. 앞 차와 각은 극의 자석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달린다. 누군지 모르지만 앞차와 헤어질때면 혼자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굿바이 인사를 전한다. 누군지 모르는 훌륭한 운전자여! 좋은 하루 보내시라~ 또 험한 도로 위에서 만나 나를 잘 이끌어주길 바라오~ 하며 말이다. 언젠가 내가 운전을 잘해서 나를 따르는 운전자가 내 뒤에서 편안함을 느끼길 바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나를 만나며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의 아이들이 그렇고 나의 영원한 연인인 남편이 그랬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부모도 그렇다. 다른 딸들보다 더 편하게 나에게 다가와 나이들어가셨음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똑같은 길도 운전자에 따라서 참 가지각색으로 차가 지나간다. 나의 모습은 어떤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하네.     

운전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주차장에서 시동 끄기 전이다. 남편이 집에 다 와서 빨리 빨리 올라오지 않고 차 안에서 뭘 그렇게 꿈지럭 거리는지 답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주차장 안에서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갖는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뒷자리 카시트에서 곤히 잠든 아이가 있으면 깨우기 싫어 더 오래 차 시동을 켜고 기다린다. 동네 한바퀴라도 더 돌며 잠든 아이를 살살 달래기도 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차 안에 작은 노트를 두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되면 가만히 눈을 감고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기도 하는데, 가끔은 글을 쓰고 싶기도 해서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글로 옮기면 이상하게 잘 정리가 된다. 정리가 되면 길이 보이고 방법을 찾게 되기도 한다. 내 차에 타면 잘 풀리지 않았던 고민들이 잘 풀리는 이유도 혼자만의 공간이기 때문인거 같다. 차에 넣어 두었던 노트에 손때가 타고 페이지가 채워지면서 그동안 써둔 글들을 읽는것도 혼자만의 재미가 되었다. 내 차가 커다란 일기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나의 시간을 지키고 싶어지기도 한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술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웠는가에 따라 평생 술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달라진다고 했다. 운전을 배우는 것도 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를 부드럽고 안전하게 몰고, 신호와 도로교통 상황을 면면히 살피는 시간을 갖는 것을 중요시 여긴 드라이빙 티처의 가르침이 나에게 온전히 물들었다. 나만의 스타일로 운전을 하지만 그 가르침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운전을 할 때 피곤해지면 문득 드라이빙 티처가 생각난다. 내 옆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길을 알려주던 따뜻한 그리고 힘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운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운전대를 잡아보니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차의 움직임만으로 그 사람을 정말 알 수 있더라. 나를 스쳐가는 차들도 나의 차를 보고 나를 가늠하겠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는지 궁금하다.

남들을 배려하고 차분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길 바라며 오늘도 안전 운전을 해야지. 빵빵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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