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학재수학원 생존기 -2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by 리드믹스터디

나는 3수를 하고 나서는 수능을 다시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험을 한 번 더 본다는 건 단순한 재도전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내 시야를 다시 좁히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로에 대한 불안은 있었지만, 서울대 정도면 옮길 곳도 없다는 생각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가지 일이 생겼고,

2019년 겨울쯤 어머니의 친척 분을 만나게 됐다.
대구에서 영어학원을 하시는 분이었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나가는 말처럼 "의대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때?"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웃고 넘겼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1년쯤 뒤에 조용히 나의 사고로 귀환했다.


2019년은 영혼 없이 흘러갔지만, 그 안에는 몇 개의 이정표가 존재했다.

나는 자주 회의에 빠졌다.
정말 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맞는지,
그 선택이 나의 길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 당시엔 컴공 열풍이 거세던 시기였다.

단과대 내에서 열리는 컴퓨터 관련 전공을 수강했고, 같이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의 단톡방을 훑다,
그가 의전원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 ‘진화와 인간 사회’라는 인문학 강의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 강의는 내 안에 남아있던 어떤 미세한 사고 틈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며
내 말과 학생들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시기 즈음,

'진지하게 강사를 하며 사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아주 작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코로나가 터졌고,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그 시기, 나는 합법적으로 놀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았고,
비대면 수업을 들으면서도 전공에 대해서 계속 회의했다.


첫 번째 이유는,
서울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일은
내 가슴이 시키는 선택이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전공 자체의 효용성에 대해 극도로 회의적인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단과대학 테크트리 중 하나인 ‘공무원 루트’가 도저히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2019년에 들었던 그 말-
'의대로 다시 가보는 건 어때?'를 다시 불러오게 된다.

‘메디컬 목표로 수능 다시 준비할까? 끽해야 고딩 시험인데.’

나는 1년 반 뒤에,
저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학재수학원 생존기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