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지만 괜찮아

Chapter 1. 좀비지만 괜찮아

by rakko

그곳에 있는데 없는 기분. 공중에 부유한 상태로, 어떻게든 지면에 발을 딛으려고 몸부림치는데 발끝만 겨우 닿을 듯 말듯한 불가항적 상황. 살아있다며 심장은 뛰는데 정작 나 자신이 산송장 같은 느낌.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절반 이상이 그랬던 거 같다.


겉으로 보이기에 평범한 삶을 살아왔을, 어쩌면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는 건장한 성인 남성인 나는, 학력이나 커리어 같은 표면적인 이력만으로 자신을 설명하기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실 그것들은 나의 극히 일부이고,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엔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국과 지옥,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며 조용히 이어온 투병기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래처와의 미팅에서, 아니면 편의점 종업원에게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이 한마디를 제대로 못해서 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차라리 겉모습이 초췌한 환자의 모습이라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양해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한 덩치 하는 키 180 은, 일본에서 살기에는 왕년에 운동 좀 했던 건강한 사람의 대표격으로 취급되니, 이런 지독한 번뇌를 가지고 살아갈 거라는 상상은 하기 힘들었을 테다.


모두에게 나이스한, 긍정적인 기운을 언제나 은은하게 풍기는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고개만 끄떡이는 사람이 되기를 택했다. 애초에 선택지는 없었고, 궁지에 몰리자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기엔, 이제는 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좀비라도 괜찮으니까 좀비인 채로 살아가기로 했다. 다만 언젠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투병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살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사는 게 버겁고, 이대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도 이따금씩 하는 걸 보면, 결코 그까짓 거라고 치부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평생 지고 가야 하는 가장 무거운 삶의 무게라고 말하기에 부족하진 않은 거 같다.


어린 시절 억지로 썼던 여름방학 일기 이후로, 처음으로 써보는 나의 사적인 글은, 투병기이자, 지나온 시간에 겪은 트라우마에 대한 회고록이 될 것 같다. 다분한 자기 연민으로 점철된 글들이 될 것 같다는 염려는 있지만, 읽혀지길 바라기 이전에, 이 연재를 통해서 나를 조금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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