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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kko Jul 30. 2024

좀비지만 괜찮아

Chapter 2. 인생은 불공평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좌우명(?)이 된 문장이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35년을 거쳐 형성된 나의 가치관을 아주 직관적으로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비관적인 문장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힘들 때마다 이 문장을 꺼내보며 큰 위안을 얻고 있다.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육상 경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레일에서 일직선으로 달려 나가며 경쟁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몸이 아프다는 비자발적인 이유로 탈선을 경험하고 보니, 각자가 처한 환경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이 잘 와닿게 된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경주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면, 나만의 레일에서 달려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보곤 한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지배되면서도, 투병일지를 읽어보면 아픈 와중에도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참 열심히도 살았다. 정신과, 내/외과, 한의원 등 병원쇼핑을 하며 받아본 검사들, 찬장을 가득 채운 수십 가지의 영양제와 양/한약들, 시도해 본 식단들, 온갖 운동 기구, 사람 없는 회사 계단에서 몰래 하던 스트레칭, 통장 잔고를 무시하고 혹시라도 효과가 있을까 일단 지갑부터 열게 했던 치료법들. 그게 나의 레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다운 삶.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관계를 맺으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경험들. 그게 어떤 건지 알면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지나가는 인생의 시간들을 한 명의 좀비가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밖의 시선에서 연애 리얼리티를 시청하는 것처럼,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인생의 장면들에서 제3자의 시선으로 시청하고 관망하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에 살아 숨 쉬고 싶었지만 그저 최선을 다해 멀쩡한 척 연기할 뿐, 순간들을 모면한 뒤에는 녹초가 되어 자리에 드러누웠다. 자괴감이나 힘들다는 생각조차 안 들고 텅 빈 동공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으로 나를 채우고 난 뒤에야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런 하루를 반복했다. 희망과 절망을 반복했다. 누구보다 의욕에 넘치다가도 일순간, 영원히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닌데, 멀쩡한 정신 속에서 이런 생각의 기복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각자의 고통이 있지만, 그 고통의 정도도 불공평하다. 나한테 주어진 고통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이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내가 기대하는 건, 죄책감없이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다, 나에겐 행복할 자격이 있다." 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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