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애니, 매지컬 에미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은 초등학교 옆 담장 너머 작은 골목 안에 있는 주택이었다.
골목 안에는 나이대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있는 네 가구가 모여 살았다.
집집마다 반찬들이 채워진 그릇들이 오고 가며 정도 함께 오고 간다.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숨바꼭질,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팔방 치기를 하며 해 질 녘까지 논다.
엄마의 밥 다 되었다는 외침 소리가 들리면 다들 아쉬움 없이 쪼르르 집으로 흩어진다.
고학년이 된 소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을 즐긴다.
아이들과 담을 넘어 다니며 놀 수도 있을 정도로 집집마다 옥상이 붙어 있다.
눈앞에 탁 트인 풍경은 오후 5시 하얀 구름이 붉게 변하던 그즈음이 가장 예쁘다.
옥상 위에 놓여 있는 평상에 앉아 노을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을 지는 저녁하늘 창가에 나의 꿈을 그려봅니다.
나의 꿈은요. 요술 천사. 나는 아름다운 꿈을 꾸어요.
언젠가 아름다운 요술 천사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사랑해 주겠지
나~아~는 사랑한단 그 말을 꿈속에서 들어요
어느샌가 내 모습은 변해있고요
아름다운 요술 천사는 착한 우릴 사랑해
나는요 요술 천사"
6살 때쯤인가 본 적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기억이 날듯 말 듯 가사를 끝까지 불러본다.
만화 이름은 불과 얼마 전에 찾아보아서 알게 되었다. 인터넷이 없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알고 보니 아주 짧게 방영되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잠깐 본 만화였을 뿐인데, 그 가사와 멜로디가 소녀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소녀는 눈물이 많았다.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면 괜히 눈물이 났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사실
그럴 만한 이유는 차고 넘쳤다. 9살 때 돌아가신 아빠가 계신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친했던 친구와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두고 갈등이 있었던 일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고,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도 끼지 못하고 겉으로 도는 것 같은 외로움, 고독함을 자주 느끼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면 형체 없는 고민은 사라진다. 노을 지는 저녁하늘을 바라보면서 마법 같은 힘이 생기길 꿈꾸어 본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길, 요술 천사처럼 예쁘고 당당한 여자가 되길.
노래 한곡을 다 부르고 언제 울었냐는 듯이 구수한 된장찌개와 밥 냄새를 맡고 집으로 내려간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한다. 나이가 더 들어서 깨닫게 된다. 그 외로움은 누구 탓이 아니며 자신 내면에서 오는 공허함이라는 것을. 소녀의 모습은 어느샌가 변해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족에게 요술 천사 같은 엄마가 되었다. 따뜻한 밥을 차리면서 요술을 부린다. 우리 아이들도 따뜻하고 포근한 꿈을 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