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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Feb 02. 2023

3 곱하기 3 은 9

끝이 없는 답답한 느낌

새해 보신각 종소리를 두 눈을 뜨고 맑게 깨어있는 상태로 들었다. 보통은 종이 울리기 전에 잠들기 일쑤였는데, 올해는 웬일인지 가장 처음으로 새해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카톡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마저 표현하지 않으니 관계는 더욱 메말라져 가는 것 같다. 올해도 계속 관계가 이어질 거라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남기고, 새로운 토끼해에는 좋은 일이 많아질 것 같은 로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구름빵처럼 부푼 마음에 비해 여러 겹 다져진 현실은 편평하고 밋밋하다. 진짜 새해, 음력설이 지나고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바람이 샌다. 마침 바깥에도 동장군이 찾아와 얼음 바람이 부니 일찍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러 가고 싶지 않다. 굳이 추위와 맞설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가 있을까. 마음에 수분이 말라버린 듯 건조해진 데에도 특별한 계기는 없다. 일주일이 지나니 구름이 걷히고 현실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현타, 현실자각타임이다.


1월 한 달 사이에 이랬다 저랬다 마음이 요동을 친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에 촉각을 곤두세워 감정의 실체를 찾아본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생겨난 작은 변화인데, 모호한 감정을 글로 해석하고 정리할수록 분명해지고 뭔가 해결되는 기분이 든다. 현실에서 내 눈에 보인 것은 열 한 개체. 나는 열 한 개체의 밥을 챙기고 있었다. 열 한 개체는 각각 하나의 독립된 생물체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생명체든 먹어야 살 수 있다. 스스로 먹을 수 있도록, 혹은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하다. 그 도움을 자처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왜 이리도 답답하면서 공허할까.


방학 중인 개체 두 명은 영양이 한창 필요한 시기이며 스스로 밥을 챙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므로 하루 세끼를 제때에 챙겨 주어야 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개체 한 명은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느라 늘 존재감에 목말라하므로 하루아침 한 끼 정성 담긴 식사로 존재감을 챙겨준다. 그리고 말 못 하는 개체 다섯 마리. 어느샌가 그들 모두의 식사까지 챙기고 있는 나, 3이 3배가 되어 9가 된 것 같이 끝이 없고 빡빡하고 답답하다.


말 못 하는 개체, 우리 집의 특별한 반려동물을 소개한다.


언젠가 쌈 싸 먹을 상추에 붙어 들어온 달팽이, 상추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애호박을 좋아하는 너. 요즘 애호박이 비싸서 애호박 전은 부쳐먹지 못하지만 너를 굶기는 것은 끔찍이 싫으니까 반드시 산다. 손톱 반의 반만큼 작았던 네가 엄지손톱보다 더 커졌구나 (내 엄지손톱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넓고 크다). 애호박에 새겨진 것이 너의 이빨 자국이라는 사실과 물을 마시려고 목을 기린처럼 뻗는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단다.


수반에 담긴 사이좋은 늙은 금붕어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행사 후 받아 온 빨간 금붕어를 시작으로 아빠의 수집이 시작되었지. 알고 보니 아빠는 금붕어 박사였어. 아픈 금붕어를 위해 매스를 들고 수술을 감행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지. 먹이만 주면 알아서 크는 게 금붕어인 줄 알았던 나는 충격적이었어. 둘째 아이가 받아온 금붕어는 가장 무난한 아이였고, 아빠가 추가로 구입한 금붕어들은 피부가 예민하거나, 머리 벼슬이나 큰 눈과 같은 독특한 신체조건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지. 화려한 날갯짓을 하던 큰 눈의 금붕어는 안타까운 사고를 겪고야 말았어. 수질 관리를 위해 꽂아놓은 여과기에 빨려 들어갈 뻔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쪽의 커다란 눈만 빠지고 몸은 빨려 들어가지 않았어. 그 후로 눈 하나로만 살아야 했지. 한쪽만 남은 눈은 시력을 금방 잃게 되어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 바닥에 붙어 있는 너를 보고 죽은 줄 알고 놀랬는데, 스포이드로 사료를 입에 갖다 주니 뽁 소리를 내며 먹는 거야. 얼마나 신기하든지. 너를 죽이지 않겠다는 아빠의 사랑을 느끼는 걸까? 요즘 아빠가 바빠져서 내가 하게 되었지만 원래 나는 신경 안 쓰고 싶었다고. 너도 알지? 매일 너에게 먹이는 시간만 30분 걸려. 힘들어. 미안해. 이런 나를 용서해.  


관상어 박람회에 갔다가 눈길을 끌었던 크리스티드 게코 도마뱀, 겨울 왕국에서 나오는 도마뱀과 같다길래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이렇게 우리 집에 데려올 줄은 몰랐어. 넌 역시 특별한 도마뱀이었어. 밀웜 같은 벌레를 먹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야. 슈퍼푸드라는 가루에 물을 타서 걸쭉한 상태로만 주면 된다는데 어느새 내가 하고 있네. 그래도 냄새도 안 나고, 사람의 핸들링도 좋아한다니 우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긴 속눈썹에 큰 눈이 부럽구나, 날름 거리는 혀도 귀엽고, 점프하며 걸어 다니는 모습도 깜찍하다. 그런데 밥은 언제 혼자 먹을 수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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