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쓰레받기가 되어 봅니다.
확실한 것은 집안 청소는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청소 전 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고 금방 더러워져서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반복되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에 비효율적이고, 체력이 많이 요구된다. 따라서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비생산적인 일에 매달리지 말고 미룰 수 있다면 미루면서 생산적이고 경제적인 일에 몰두하는 편이 좋다. 하루 24시간 중 깨어 있는 16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가사노동 중에서도 청소보다는 요리와 육아에 시간 배분을 하고, 청소를 줄이더라도 독서나 글쓰기 등 자기 돌봄시 간에 할애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전업주부는 가족의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열이 나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시간에 따라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처럼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가족의 감정상태 또한 쉽게 체크할 수 있다. 전업주부는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먼지와 오물 쓰레기 말고도 감정 쓰레기 역시 널려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금방 치워내지 않으면 쌓여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오고, 신랑은 직장을 다녀오지만 전업주부는 나가는 곳도 집, 들어오는 곳도 집이다. 외부에서 쌓인 감정들이 집 안까지 들어오면 집에만 있었던 나는 숨이 막힌다. 감정처리가 익숙하지 않았을 때에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 많이도 헤매었다. 가족들의 모든 감정 화살이 나에게 향하여 쏟아짐을 느끼며 마치 내가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았다. 쏟아지는 감정 쓰레기들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여 넘쳐흘러서 구린내가 나는 쓰레기통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왜 나에게만' 이라고 외치는 피해의식이 들면서 괴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괴물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겠느냐고.
나는 왜 가족들이 내뱉은 감정들을 모두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스스로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인정한다면 통을 비워 버리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은가. 담아내지도 비워내지도 못하고 있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걸 보면 사실은 애초부터 누군가의 감정을 담을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도 추스르지 못하는데 남의 감정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착각이고 오만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피해의식을 버리고 객관적인 3인칭 입장에서 가족들의 감정 쓰레기를 모아보았다. 상대가 아닌 본인에게 향하고 있는 감정의 화살촉이 비로소 눈에 띄고, 통에 담기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감정 쓰레받기를 자처하며 쓰레기들을 그러모으고 분류를 한다. 정체 모를 쓰레기들과 재생 불가능한 것들은 과감히 버려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서 먼지를 털어내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이었지만 제 모습을 드러내면 결국 한 가지로 분류된다. 원초적인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여러 모습의 감정쓰레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잔소리하는 남편과 말 안 듣고 짜증 부리는 아이를 보면서 무엇이 불안해서 가시 같은 감정쓰레기들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유를 알게 되고 안심시켜 주니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감정쓰레기를 대량생산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편안해지고 쓰레기 같은 말을 자제하게 된다.
보상이 없고 신체 노동만 요구하는 외적 청소에 비해 감정 노동을 요구하는 내적 청소는 생활하는데 꽤 쓸만하며 감정 쓰레받기 역할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