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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Dec 09. 2022

내 남자 친구는 어디에

중국어 첫 경험


  가족은 목소리와 말투뿐 아니라 취향까지 닮는다고 한다. 나에게는 한 살 위인 언니가 있다.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가 된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기도 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언니 곁에서 나는 피아노 반주를 하며 성당 청년활동을 하기도 했다. 먼저 대학생이 된 언니는 어른이 된 것처럼 나를 교정에 데리고 다니면서 의기양양했다. 중국어 과제를 하느라 한자를 빼곡히 쓰는 모습,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면서도 동아리에서 MT를 가겠다고 허락받는 모습들이 내 눈에는 멋져 보였다. 게다가 키가 큰 멋진 남자 친구가 생겼다. 교회 오빠가 아닌 성당 오빠다. 다 가진 것 같은 언니가 부럽다.


  내가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언니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언어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니처럼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시외에 있는 대학교의 중어중문학과를 지원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를 보니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야 간섭을 덜 받을 것 같았다.


  2학년이 된 언니는 학교와 교류 중인 대만 사범 대학교에 어학연수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대학생 새내기인 나는 난생처음 배우는 중국어가 낯설어 1학기 중간고사를 망쳤다. 해외에 나가는 언니가 부러우면서 한편으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엄마, 언니가 자기 방에서 지내면 된다고 나보고 놀러 오래요, 다녀오면 중국어 공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결국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2주간의 대만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난생처음 대만 여객기를 타서 긴장했지만 나름 중문학과 학생 이라며 사과주스를 달라고 할지, 콜라를 달라고 할지 중국어로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 apple juice, please” 앗, 젠장 중국어 말하기 실패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짧은 영어로 말해도 스튜어디스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타이베이 공항에 내려서는 언니가 나를 못 찾으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옆도 보지 않고 눈은 안내표지판만 쫒았다. 뭐지? 내가 보던 중국어 한자보다 복잡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깨끗한 녹음으로 듣던 중국어랑 차이가 많이 난다. 

“ 중국 대륙 중국어와 대만 중국어는 다르다. “ 

  우리 학교는 중국 대륙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대륙식 표준어를 가르치고, 언니 학교는 대만식 표준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상관없어. 어차피 같은 중국어 표준어를 사용하니 쓸모가 있겠지.' 기대했다. 하지만 1학년인 나는 중국어 듣기가 미숙한 데다가, 한자도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를 사용하니 시험을 위해 외웠던 단어들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공항 출국 게이트에는 언니가 나와 있었다. 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낯선 땅에 도착하여 한껏 긴장했던 나는 언니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이어서 낯익은 모습도 눈에 띈다. 언니와 막 연애를 시작했던 성당의 키 큰 오빠다. 

“오빠가 왜 여기 있어? “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오빠도 여기 3개월 동안 나 따라서 중국어 공부하러 왔어”


공감과 이해가 되는 자매이지만 서로가 비교되기 때문에 질투도 심하다. 


  언니가 내 취향과 같은 키가 큰 오빠와 연애를 하는 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한다. 반면에 청춘을 불사르겠노라 다짐했던 1학년 새내기 여학생은 사실 외롭고 우울했다. 대만을 여행하는 내내 질투와 시기심이 폭발했다. 7월의 대만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 건지, 하루에도 소나기성 비가 몇 번이고 퍼붓다 그치는 바람에 피부는 끈적댔다. 길거리의 수많은 오토바이들의 매 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꽁냥꽁냥 대는 언니와 성당 오빠의 모습이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중국어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소심해져 있는 내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언니가 말만 하면 짜증스러운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북부에서 남부로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다. 눈치를 한껏 보며 조심스럽게 대하던 언니와 오빠에게 미안함만 남았다.




  그로부터 8년 뒤, 멋쩍었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었다.

“형부 그때는 미안했어요. 근데 엄마는 여전히 모르세요. 철없었던 처제를 이해해 주실 거죠? 

"당연하지, 처제. 장모님께는 끝까지 비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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