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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Dec 21. 2022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어학이냐, 문학이냐 


스쿨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40분 동안 달려서 도착한 대학교. 어제까지 어린이 었다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산뜻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도시를 하나 건너왔을 뿐인데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다른 성격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안녕하세요, 국제어문학부 99학번 중어중문학과에 지원한 박윤희입니다.” 

중국어와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다. 중국어를 1년 먼저 배운 언니가 고급 정보를 주었다. 중국 땅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인구가 많아서 앞으로 중국 시장이 커질 거란다. 당시에는 큰 땅과 많은 인구가 어떻게 시장으로 연결이 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좋은 거 같아 전공 선택을 뿌듯해했다.  


그런데, 중국어만 공부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많은 대학에서 유사성이 있거나, 지속가능성이 높거나 낮은 학과들을 통합하며 학부 시스템을 적용시키고 있었다. 한자를 사용하는 언어라는 유사성 때문이었을까? 일어일문학과와 중어중문학과가 2년 먼저 학부로 통합되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일본어 시험지와 중국어 시험지에 어제까지 열심히 외운 한자들이 뒤섞여 바꾸어 써버리는 바람에 어이없는 점수를 받고야 말았다. 왜 나라마다 한자를 다르게 써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뼈저리게 경험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내가 입학한 1999년에 영어영문학과가 더해져 국제어문학부가 탄생하게 된다. 세 학과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한국에서 유행하는, 혹은 이제 유행하게 될 외국어이다. 학부에 입학하게 된 전공자 입장에서는 쟁쟁한 외국어 3가지를 동시에 공부해야 하는 난해함만 가득하다. 


자존심이 강한 세 개 학과 교수님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시스템에 적응 중이셨고 물론 학과 간의 교류는 눈에 띄게 적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로 편 먹은 중문일문학부와 영어영문학과의 선배들 속에서 비둘기 학번 새내기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형국이다. 

대학생이 된 순간부터 나는 공부보다는 성격개조에 목표를 두고 사교활동에 매진하였더니 학부를 대표하는 학회장이 된다. 통합 자체가 불가능한 각 학과의 주요 행사 등을 챙겨야 하니, 해야 할 일이 세 배이다. 


나에게 대학은 공부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숨은 성격을 발현하기 위한 곳이다. 내 전공은 

취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 줄 뿐이다. 학부 시범운영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99학번은 주 전공을 4학년이 되어서야 결정하게 된다. 영어는 공부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진다. 일본어 말하기가 가장 쉽지만 취업이 잘 되려면 아무래도 중국어를 잡아야겠다. 고심 끝에 중어중문학을 주 전공으로 일어일문학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취업을 위해서 영어 외 제2 외국어 자격증이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국제어문학부는 그야말로 20년 앞을 내다보고 명견만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어학이 아니라 문학이었다. 사실 어문이 어학인 줄 알았다. 어문은 문학이다. 중어중문학과 학생이 중국어회화를 잘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말 보다 글을 배웠기 때문이다. 

 

최근 MZ 세대의 문해력이 심각하다 하고 어느 한편에서는 어른의 문해력의 실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언어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한국 사람의 대부분은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석된다. 나 자신만 봐도 어문과 어학이 구분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여전히 책보다는 미디어 보는 것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의 탓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수능세대로써 독서보다는 수많은 문제집을 풀기에 바빴고, 대학 시스템과 교육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도 모르고 순진무구하게 따라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적어도 다른 나라 언어로 된 문학을 공부하려면 해당 언어의 지식은 물론 해석해 낼 수 있는 모국어의 능력이 있어야 했다.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국어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는 척, 당연한 척하는 헛똑똑이 일 뿐이다. 문해력이 낮은 것은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사회 문제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예견했듯이 중국은 시장으로서 가치가 높아졌고, 그에 따라 중국어가 대부분 중고등학교의 제2외국어 과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학의 실용성 측면이 강화되었다. 실용적인 것은 매력적이다. 다만 개성이 있다면 그 매력은 배가 될 것이다. 개성 있게 사는 삶을 위해 나는 40대가 되어 책을 읽는다. 내 아이들에게 나의 실수가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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