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여름날 아이스 메뉴가 가득한 메뉴판을 들고서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럴 때마다 직원은 한번 더 확인하듯 되묻곤 했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손부채를 부치면서도 내 입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들어오기를 바란다. 입이 데일 정도로 뜨거워서 후후 불면서 마셔야 하는 온도, 그 온도가 나는 좋다.
나의 첫 필명에도 그 마음이 담겨 있다. 뜨거운 커피의 온도만큼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지은 이름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다지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 후 마음을 쏟기까지의 예열 시간이 꽤 길다. 대신 은근한 마음의 온도로 천천히 데워져 오래 온기를 품고 지내는 편이다. 다만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그 온도는 늘 충분하지 않았다
3년 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글쓰기 강의를 들었고, 글을 쓰려는 이유도 모른 채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 글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낡은 자물쇠로 오래 잠겨 있던 마음의 문에 맞는 열쇠를 찾는 과정과 같았다. 열쇠를 찾지 못한 채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브런치에는 ‘뚜샷뜨아’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투샷이 들어간 뜨거운 아메리카노라는 뜻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그렇게 포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름은 직관적이지 않고, 쉽게 불리지도 않았다. 투샷이 아니라 왜 뚜샷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단순히 리듬감을 주고 싶었다면 너무 가벼워 보일까 걱정했다. 결국 나는 불리지 못하는 필명만 남겨놓은 채 글쓰기와 거리를 두었다. 파일은 열었지만 글은 쓰지 않았다.
사람마다 마음의 온도는 다르다. 준비를 마친 뒤 천천히 온도를 높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준비 없이 마음만 달아오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 후자였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했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좋은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있으려 애썼다. 어느 순간 책 속 문장에서 내 마음에 맞는 열쇠를 발견했다. 자물쇠를 열고 그동안 묵혀 있던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3년 전의 미지근했던 마음은 이제 뜨겁게 끓고 있다. 글을 그냥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잘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를 설명하기 위한 수식어는 필요 없어졌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박윤희는 여전히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이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