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관계 때문에 웃고, 관계 때문에 울지요. 가끔은 유쾌하지 않은 관계도 경험합니다. 별 실수도 아닌데 폭언을 퍼붓는 직장상사, 만날 때마다 불평하는 친구에서부터 모르고 부딪혔더니 바로 쌍욕을 날리는 사람까지. 불쾌한 관계의 스펙트럼도 다양합니다.
법륜 스님은 타인이 던지는 이런 분노와 폭언 같은 감정 덩어리들을 '쓰레기'라고 부릅니다. 누가 쓰레기를 던지면 그걸 가지고 있지 말고 내던지라고 말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의외로 남이 던진 쓰레기를 못 버립니다. 등에 메고 가슴에 안고 이고지고 다닙니다. 20년 전에 들었던 서운한 말부터 방금 전에 들었던 속상한 말까지 빼놓지 않고 내 마음속에 저장하면서 살아요. 모임에 갔다 와서는 들었던 말을 이리저리 분석하면서 복기하고, 예전에 상처가 되었던 말을 다시 꺼내어 스스로 또 상처받기도 하지요.
왜 우리는 쓰레기를 못 버릴까요? 남이 던진 쓰레기들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면서 분노하고 슬퍼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의 쓰레기가 혹시 나의 어떠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다른 사람이 던진 쓰레기는 그 사람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정말 이 부분을 반복해서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던진 쓰레기는 그 사람 것이지 절대 내 것이 아니에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꺼냅니다. 항상 쓰레기를 꺼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은 그것밖에 꺼낼 것이 없어요. 살짝 툭 건드려도 쌍욕을 뱉는 사람은 그 안에 분노가 가득 차 있어서 그래요. 항상 불평을 하는 사람은 그 안에 억울함이 가득 차 있어서 그래요. 그 사람 자신의 불편함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 사람을 대할 때 평안함이 생깁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바뀌어야 되는데 안 바뀌어서 어쩌지.' 하고 조바심을 내거나 덩달아 분노하지 말고 저 사람은 저런 상태구나 하고 받아들여보세요. 우리는 그들의 겉으로 나온 쓰레기만 봐도 유쾌하지 않은데 그걸 가슴에 가득 안고 다니는 그 사람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되 쓰레기는 튕겨내요. '응, 안녕~'하고 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우리 이런 말 자주 하지요. 직장이나 시댁식구처럼 갑을관계가 있는 곳에서 저런 말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특별히 사람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는 필터링을 잘 안 하기 때문에 더욱 배려 없는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분노 밑에는 그들이 쓰레기를 던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깔려있어요. 그들이 쓰레기를 던진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 바꿀 수 없지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어요.
사리분별하면서 내가 행동하고 있다면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그들의 쓰레기니까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니까 그대로 두고 나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면 됩니다. 오직 내 마음만이 내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에요. 교사나 부모와 같이 양육자의 입장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그러더군요. 분노는 배설물과 같다고.똥을 혼자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잘 처리해야지 아무 데나 싸면 곤란하지요. 분노도 그와 같아서 남에게 마구 쏟아내기보다는 스스로 조절하여 풀어야합니다.
쓰레기를 마구 투척하면서 다니는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그 사람을 연민의 눈으로 보고, 그가 던지는 쓰레기에 반응하지 않으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에구, 오늘도 쓰레기른 던지네.'하고 넘겨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잘 넣고 개운한 하루를 맞이하세요. 쓰레기가 잠깐 왔지만 금방 보내고 허허 웃을 수 있다면, 쓰레기가 당신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면 당신의 행복은 굉장히 견고한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행복이 쓰레기를 자꾸 꺼낼 수 밖에 없는 그들을 결국 평화로 이끌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