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실거주 예정지 방문기
도시의 수천 개가 넘는 4층 이상 건물에 주인이 제각각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부자들을 따라 배우면서 1층, 1층 쌓아가면 곧 4층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맛,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은가!
한국 만화계의 거장 허영만의 <부자사전> 첫 대목이다. 왕년의 재테크 분야 인기 서적다운 속물적인 도입 아닌가?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나는 자본주의의 화신이었던 것 같다. <부자사전>이나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감명 깊게 읽고, 어린 나이에 당차게도(?)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구해다가 돈을 벌어들였다. 그래봤자 푼돈을 모아서 뭘 하고 싶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부자가 되는 법’을 말하는 책들을 즐겨 읽었던 기억만은 분명하다.
풍족한 삶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의 역사보다도 긴 세월 동안 쌓여왔을 것이다. 그만큼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어린아이도 느낄 정도로 인류 보편의 욕망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해가 지기 전까지 표식을 남긴 땅을 준다는 말에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린 탓에 탈진해 죽은 주인공이 나온다. 정작 그에게 필요한 땅은 죽어서 뉘일 만큼이었다.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했던 바와 별개로 땅 좀 얻겠다고 죽을 정도로 뛰었다는 것을 보면, 땅에 대한 소유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오래된 욕심인 것 같다.
사람들의 욕망이 꾸준히 땅, 아파트, 그리고 도시로 이어진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부동산은 부자가 되는 통로로 아주 오랜 세월 확실하게 기능해왔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투영되어왔다.
또 한편으로 부동산에는 ‘내 몸 뉘일 곳’에 대한 욕망도 투영되어 있다. 좋은 집에 살면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소소한 바람. 그만큼 부동산은 여러 층위의 욕망이 쌓여있다.
요컨대 부동산은 내 몸을 편히 뉘일 곳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계층을 끌어올리는 일종의 사다리였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장삼이사들은 오늘도 ‘강남불패’를 외치고,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 보편의 욕망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언젠가부터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서울에 집 살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부모 세대의 자수성가는 내 집 마련으로 상징화되는데, 우리 세대는 내 집 마련에 대해 불안해한다. 결국, 자수성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 청와대 대변인의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부가가치도 만들지 못하는 부동산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야 한다며, 이제는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정부가 수많은 규제책을 쏟아내던 시기에 정작 ‘청와대의 입’은 투기를 하고 있었다. 보편의 욕망이 정책에 억눌리면서 부동산 경기가 주춤한 요즘, 김의겸 대변인의 투기 의혹은 강한 반발을 샀고, 결국 김 대변인은 이틀 만에 사임을 표명했다.
김의겸 전 대변인의 사임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가장 먼저 청와대의 고위공직자가 정부 기조와 정반대의 이율배반적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모두가 가지는 부동산에 대한 보편의 욕망을 억누르겠다고 정부가 매일같이 규제정책을 발표하는 시점에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투기를 했다는 사실은 청와대 기강의 문제다. 최소한의 직업 윤리마저 실종된 것 아닌가.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의 역린을 건드렸으리라.
게다가 조만간 재개발이 이루어질 금싸라기 땅에 ‘실거주 목적’으로 상가를 샀다는 그의 말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시장 바로 옆 상가 건물을 단순히 실거주 목적으로 25억이나 들여 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결정장애에 대해 질려버린 아내의 선택’이라니. 끝까지 자신은 그 결정에서 자유롭다는 책임 회피성 변명은 솔직히 구질구질하다.
초원복집연구회 취재팀이 문제의 건물을 찾았다. 김의겸 전 대변인이 구매한 상가는 9호선 흑석역 3번 출구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허름한 시장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뉴스에서 많이 보던 2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역에서 도보 3분 정도에 불과하고, 바로 앞에는 중앙대 병원과 하나로마트가 있으니 실로 실거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김 전 대변인은 이곳에 들어설 ‘시그니처 캐슬’에서 윤택한 삶을 영위할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해당 상가에 입주한 호식이두마리치킨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연중무휴라는 안내와는 달리 닫혀 있어서 그 옆 백반집으로 들어갔다. 주말 저녁이었던 탓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고, 김치찌개(6000원)와 제육볶음(8000원)을 시켰다. 꽤 푸짐하게 상이 차려졌다. 음식은 좀 자극적이긴 했으나, 그럭저럭 괜찮은 백반집이었다. 배불리 먹고도 음식이 남아 민망했다.
음식값을 치르면서 사장님께 넌지시 요즘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냐고 여쭈어 보니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사장님께서는 마침 전 건물주의 동생이었는데, 부동산을 통해서 건물을 사고파는데 솔직히 사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팔겠냐고 왜 기자들이 자신에게 꼬치꼬치 물어대는지 피곤하다고 하셨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민경욱 의원)들까지 잔뜩 와서 기자회견 비스무리한 것을 하더니 식사도 하고 갔단다. 참고로 민경욱 의원이 맛있게 드신 음식은 만두(6000원)였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김의겸 대변인 논란을 필두로 장관 인사는 난항에 부딪혔고, 그저께(4월 3일) 보궐선거에서 여당은 어려운 싸움을 했다. 2013년 성추행 사건으로 윤창중 대변인이 물러나는 과정에서 박근혜 청와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강이 무너지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지도부에 대해 시민들은 언제나 그 대가를 묻는다. 경고등이 켜졌다.
상호: 오장동함흥냉면
위치: 서울시 동작구 서달로 12가길 11(흑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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