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강연 ‘송길영 작가’ 편을 보고)
(세바시 강연 ‘송길영 작가’ 편을 보고)
얼마 전 유튜브로 세바시 강연 '송길영 작가' 편「홀로 선 핵개인,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를 보았습니다.
“명함에서 이름만 남는 시대.”
그 문장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소속’으로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디에 다니는지, 어떤 직책인지, 그게 나의 정체성을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했습니다.
길드의 도제 시스템*이 사라지고, 산업혁명이 기계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더니,
* 중세 유럽의 장인들이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던 제도로, ‘도제–직인–장인(마이스터)’으로 이어지는 인간 중심의 노동 구조를 말한다.
이제는 기술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테크 혁명이 한창입니다.
송 작가님은 말했습니다.
“기계가 중심인 세상(테슬라의 공장)과
사람이 중심인 세상(LVMH의 장인 정신)이 공존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은 곧 이런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송 작가는 ‘핵개인(核個人)’이라는 단어를 꺼냈습니다.
자기 삶의 의결권을 가진 사람,
즉 더 이상 조직의 한 톱니바퀴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존재를 뜻합니다.
이제는 고용이 먼저가 아니라,
일(검증)이 먼저 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프로젝트 단위로 일할 수 있고,
세금 신고도 AI나 홈택스로 직접 해결합니다.
“나의 스승은 유튜브, 나의 동료는 AI.”
송 작가님의 이 말처럼, 우리는 이미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조직은 작아지고, 개인은 증강되는 시대.
핵개인은 ‘홀로’이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호명사회’라는 개념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상대를 이름보다 ‘직책’으로 부르는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장님’, ‘대리님’, ‘누구 엄마’, ‘형님’ 같은 말이
우리의 관계를 대신하고, 때로는 벽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한 존재감도 함께 흐려집니다.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관계가 아닌 효용으로 불려야 한다.”
그는 한 의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병원 정형외과 과장님’이 아니라
‘백년허리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사람.
이름이 곧 가치가 되고, 의미가 되는 사람.
그것이 앞으로의 이름의 방향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으로 남고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아빠’,
회사에서는 ‘○○팀 ○과장 ’,
SNS에서는 ‘블로거, 브런치 작가’.
그 모든 걸 떼고 나면, ‘나’라는 이름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송 작가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의 명함에 당신을 설명할 단어 하나가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당신의 파이널 보케블러리(Final Vocabulary)입니다.”
그 말이 참 깊었습니다.
결국, 나의 삶과 신념을 담은 하나의 단어,
그게 내 이름 옆에 놓이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죠.
송 작가님은 강연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조직 뒤에 숨을 필요도, 숨을 수도 없는 사회가 온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고, 온전히 보상을 받는 사회.
그것이 바로 공정한 호명사회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책임과 신뢰, 의미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문득, 내 이름을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직책도, 역할도 아닌 나의 언어로.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이름 불릴 수 있도록...
“명함에 이름만 남기겠다는 꿈을 꾸면,
언젠가 그 꿈은 현실이 된다.”
— 송길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