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주머니에 담긴 고백
내가 비행을 하던 시절은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갓 입사한 신입 승무원이었던 내게 비행기 기내식은 별천지였다.
평소 구경하기 힘든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승무원 규정은 엄격했다.
기내 물품을 단 하나라도 밖으로 반출하면 징계라는 서슬 퍼런 규칙이 나를 압박했다.
3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첫 비행으로 일본 나리타 노선에 올랐다.
긴장된 OJT(현장 교육) 기간, 와인 서비스에 곁들일 스낵으로 작은 아몬드 봉지가 제공되었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알맹이를 입에 넣는 순간, 불현듯 한 얼굴이 스쳤다.
엄격한 통제로 나를 옥죄었지만, 동시에 군것질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나의 아버지.
"아, 이건 딱 아버지가 좋아하실 맛인데."
그 생각 하나가 규정보다 앞섰다. 9남매 중 여덟째,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던 막내딸은 갤리에 쌓인 아몬드 중 대여섯 봉지를 유니폼 재킷 주머니에 몰래 찔러 넣었다.
불룩해진 주머니 탓에 생명과도 같던 승무원의 옷맵시가 엉망이 되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안방에서 이 아몬드를 맛있게 드실 아버지의 모습으로 향해 있었다.
사달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졌다. 운항 승무원 전용 입국장 엑스레이를 통과하는데, 기계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앞서 나간 동기들과 선배 선생님이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삐리릭, 삐리릭!"
세관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든 것을 다 꺼내놓으라 했다. 앳된 신입 승무원의 손에서 머쓱하게 쏟아져 나온 것은 뜻밖에도 아몬드 봉지 몇 개였다. 금덩이라도 숨긴 줄 알았을 세관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런 거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라며 아몬드를 다시 짚어주었다. 그 눈빛엔 규정 위반에 대한 질책보다, 사고 친 막냇동생을 보는 듯한 묘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인 나를 향해 선생님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얘, 가지고 나온다는 게 고작 아몬드야?"
무안함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지만, 그날 밤 아버지가 "이게 뭐냐" 하며 맛있게 아몬드를 드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남몰래 안도했다.
이제는 마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간식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몬드를 볼 때마다 공항청사의 입국장에서 붉어졌던 내 얼굴을 떠올린다. 엄격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승무원이 되었으면서도, 정작 하늘 위에서 가장 먼저 아버지를 생각했던 나의 서툴고 부끄러운 첫 비행.
내 주머니를 불룩하게 만들었던 건 아몬드가 아니라,
뒤늦게 깨달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