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원만 주세요
막걸리 누룩 향이 코끝을 자극하던 양조장은 어린 내게 미지의 공간이었다.
둥그렇고 거대한 검은 통들이 도열한 어둠 속에서, 평소 겁 많던 나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그곳의 어둠은 오히려 신비롭고 친근한 비밀의 방 같았기에, 내 유년의 기억 중 아버지라는 존재는
늘 그 누룩 향기 섞인 어둠의 맨 앞줄에 서 있다.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다.
평소 "요, 새침데기야~"라고 부르실 만큼 곁을 내주지 않던 막내딸이었지만,
나는 등굣길에 종종 아버지의 사무실에 불쑥 나타나곤 했다.
아무 소리 없이 책상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히 말을 건네셨다.
"왜 왔어?"
"십 원만 주세요."
그때 받아 든 십 원으로 무얼 사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 아침 일찍 출근해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 허전했다는 사실이다.
어린 막내딸은 '십 원'이라는 핑계를 빌려,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었나 보다.
자존심 강한 새침데기였던 나는 동전을 손에 쥐고도 머쓱함을 감추려
누룩 향 진한 술방을 한 바퀴 휘 돌아 나오곤 했다.
마치 공간을 점검하는 어린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흔한 인사조차 없이 쌩 하니 달려 나갔지만,
손바닥에 꼭 쥔 십 원짜리 동전에는 아버지의 무심한 사랑이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