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퇴사하라 하셨다

바그다드 특별기

by 리치

1985년 3월,
그날은 정기 스케줄이 아니었다.

데이오프도 아니었고 , 집에서 스탠바이하는 스케줄, '홈 스탠바이' 중이었다.

회사에서 오는 전화벨이 울렸다.

“출근 가능합니까?”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로 향했다.

정기 노선인 줄 알고 브리핑실에 들어갔고, 늘 그렇듯 근무수첩을 펼쳤다.

“오늘은 바그다드 특별기입니다.” 기장의 첫마디였다.

바그다드.
전쟁이 진행 중인 도시.


브리핑실에서야 목적지를 들었다.

그 순간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제야 이 비행이 전쟁지로 향하는 수송기라는 걸 알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정해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이미 남승무원과 기장에게는 행선지가 미리 전달되어 있었다는 것.

여승무원 4명은 브리핑실에서야 처음 들었다는 것.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안에서 작은 균열이 생겼다.

위험을 감당해야 할 사람은 모두였는데, 왜 어떤 정보는 일부에게만 먼저 주어졌을까.

그때 처음으로 회사라는 조직이 완전히 공평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날 임무를 수행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작은 반감이 남아있다.


그렇게 대한항공 특별기에 올랐다.

보잉 707 , 여승무원 4명, 남승무원 1명, 그리고 운항 승무원 기장과 부기장.

우연인지 그날 승무원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많았고

우리는 미사일이 쏟아지는 바그다드 공항에 착륙하기 전

비행기 내 전등을 다 끄고 컴컴한 실내에서 기내 담요를 뒤집어쓰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23살의 내게 무서운 공포가 밀려왔다.


도착한 공항의 공기는 적막했다ㆍ
폭격의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긴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던 승객들의 얼굴에는 말보다 먼저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 그들 중에는 부상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대사관 직원들. 그들이 들고 있던 것은 짐보다 불안이었다.

나는 물을 건네고, 좌석을 안내하고, 평소처럼 안전벨트를 확인했다.

평소처럼.

하지만 그날의 ‘평소’는 누군가에게는 생존이었다.


이륙 후 기내는 조용했다.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창밖을 오래 보지 않았다.

무사히 바그다드 공해를 벗어나자 기내 승객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렘을 만끽하며 들떠있었다ㆍ


바그다드로 향하기 전 경유지인 바레인에서 하루를 체류하는 호텔에서

다른 노선으로 체류 중인 동기들을 만났다.

“네가 그 특별기 타는 거야?”
“어떡해… 왜 하필 너야?”

특별기가 처음으로 뜬 역사였기에 다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이 쏟아질수록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두려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업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중에 기장에게 들은 얘기로는 대한항공 사장이 직접 배웅을 했다고 들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날, 집 현관문을 열자 부모님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뉴스에 특별기 떴다더라…”

TV 자막 아래 흐르던 속보.
부모님은 저 승무원들 부모는 얼마나 걱정이 클까 생각하고 계셨다 한다.
그 승무원이 자신들의 딸인 줄도 모른 채.

" 내가 그 특별기로 수송한 승무원이었어요"

엄마는 내 어깨를 끌어안았고 ,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만둬라.”짧은 한마디였다.

그 말속에는 명령이 아니라 딸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하늘로 향할 때 땅에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또렷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비행을 했다.

그러나 가끔, 이륙 직전 객실을 한 바퀴 돌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를 다시 땅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중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날 집에서 울리던 회사의 전화벨 소리와,
그보다 더 크게 울리던 아버지의 한마디.

“그만둬라.”

나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지만, 그 말 덕분에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딸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쟁지로 향했던 그 특별기는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왔고,

그날 나는 내가 돌아와야 할 가장 안전한 공항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특별기#바그다드#부상#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