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균형이 빚은 아홉 개의 세계
.. 9번 막내가 태어나기 전 가족사진..
자식이 많았던 우리 집에서 부모의 사랑은 늘 한정된 자원이었다.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각자에게 돌아간 몫은 충분하지도 않았다.
맏이 큰언니는 아버지의 유난한 사랑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오래 보호받는 자리에서 머물렀다.
둘째 언니는 미대를 다니던 시절, 학비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가져갔고
그 일은 아버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그 이후 아버지는 같은 길을 다시는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미대 진학의 꿈을 말했을 때, 이미 문은 닫혀 있었다.
셋째 언니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유난히 컸다.
자신의 몫을 또렷이 주장했고, 그 목소리는 종종 집안의 균형을 흔들었다.
넷째 언니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괜히 더 미안해하며
넓은 등으로 어린 나를 업어주던 사람이었다.
다섯째와 여섯째는 저마다 눈치를 배웠고,
귀하디 귀한 아들로 태어난 오빠는 기대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그만큼 외로워 보였다.
막내 남동생은 누나들 사이에서 자라며 유독 나를 따라다니던 아이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일찍 깨달았다.
사랑은 공평하지 않으며, 그 불균형이 사람의 뼈대를 만든다는 것을.
중학생이 되던 해,
아버지는 입학 선물로 내 손목에 시계 하나를 채워주셨다.
구 남매 틈바구니에서 내 이름으로 온전히 주어진 몇 안 되는 ‘새것’이었다.
그것은 물건이라기보다 내 차례가 한 번쯤은 돌아온 듯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출가했던 큰언니가 친정에 들러 그 장면을 보더니 말했다.
“아버지, 그거 나 주면 안 돼? 내가 갖고 싶던 건데.”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시계를 감싸 쥔 채 잠시 멈춰 있었다.
내 것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그때 아버지는 말했다.
“허허, 네 동생 선물인데…”
말끝을 흐리는 그 목소리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확신을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내가 배운 건 단순했다.
내 기쁨은 언제든 누군가의 기분 아래에 놓일 수 있다는 것.
큰언니가 내 ‘현재’를 흔들었다면,
둘째 언니의 일은 내 ‘미래’의 문을 닫게 했다.
내가 미대를 포기해야 했던 이유는 재능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실망을 겪은 아버지의 마음이
다시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정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결과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이런 사소하고 반복적인 균열들은
우리 형제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남겼다.
아이였을 때 우리는 사랑을 두고 경쟁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기억을 두고 경쟁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맏이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비어 있었다.
누군가는 중심이 되어 형제들을 묶어야 했지만,
우리는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굳어져 있었다.
보호받던 사람은 여전히 배려를 기대했고,
상처를 오래 품은 사람은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 틈에서 나는 또다시 가운데에 섰다.
중재자가 되었고, 연락을 돌렸고, 분위기를 수습했고,
서로의 말을 완충하는 사람이 되었다.
막내였지만,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역할이 특별히 성숙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서였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균형을 맞추는 사람’으로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누군가는 계속 보호받는 위치에 머물고,
누군가는 과거를 곱씹고,
누군가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하는 동안
나는 계속 어른 역할을 해왔다.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오려 한다.
형제의 중심에서,
모두를 이해하려 애쓰는 자리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려 몸을 반으로 접던 자리에서.
사랑의 불균형이 사람의 뼈대를 만든다면,
나는 이제 그 뼈대로
타인을 지탱하는 대신 나 자신을 세워보고 싶다.
아버지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던 습관을 내려놓으며.
나는 더 이상 허락을 기다리는 아이로 남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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