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뢰를 무너뜨린 남자친구는
그 후로도 줄곧 내 승무원 생활을 끝낼 것을 종용했다.
입사 때부터 반대했던 그에게 '딱 1년만 비행하겠다'라고 약속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상황을 전해 들은 입사 동기들은
"그 남자애를 정리해야지, 네가 왜 회사를 그만둬?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라며
이구동성으로 나의 퇴사 갈등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승무원 유니폼을 벗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다시 한번 그를 믿어보자는 마음,
그리고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나의 나약함 때문이었다.
훗날, 나는 그때의 선택을 수도 없이 후회하고 자책하곤 했다.
나의 의사보다 상대의 요구를 우선시했던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현우는 그 시간 속에서도 가끔씩 연락을 해왔다.
마치 아웃사이더처럼 내 주변을 맴돌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내가 승무원을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현우는 진심으로 나를 말렸다.
“난 네가 공항 입국장을 당당하게 걸어 나오던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너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그랬다.
3년을 사귀는 동안 단 한 번도 나를 마중 온 적 없던 사람과,
허락받지 못한 자리에서도
먼발치에서나마 나를 보기 위해 입국장에 서 있던 현우.
두 사람의 차이는 그 기다림의 거리만큼이나 선명했다.
현우는 의대 본과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학업에만 전념하기에도 숨이 가쁜 나날이었을 텐데도
그의 시선은 늘 나를 향해 있었다.
결국 나는 사귀던 남자친구와의 끊임없는 갈등에 지쳐,
그 위태로운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절대 헤어질 수 없다며 버티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그의 부모님을 찾아가 내 확고한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길었던 나의 대학 시절 연애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길었던 연애를 정리하고 난 뒤에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애써 외면하던 한 사람이
조금씩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