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by 리치

혼자 5박 6일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한 달째 말을 하지 않던 때였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필요한 말조차 하지 않았다.

집 안의 공기는 묘하게 조용했다.
사람은 둘인데, 집은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한 달 동안
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오갔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졸혼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이혼을 하면 어떤 삶이 될까.

생각은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현관에 내려놓은 내 가방을 남편이 말없이 들어
방 안으로 옮겨 놓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아마 이 정도일지도 모르겠구나.


30년 동안 남편은
먼저 화해를 시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언젠가는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 침묵을 오래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투고 나면
그 사실에만 마음이 꽂혀
결국 내가 먼저 화해를 서두르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한 달은 조금 달랐다.


남편과 대화가 끊긴 그 시간 동안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사랑 이야기를
조금씩 연재하고 있었다.

현실의 나는
남편과 말을 하지 않은 채
같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지만,


글 속에서는
오래 전의 한 사람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사랑과
지금의 결혼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하나는
설렘으로 시작되는 사랑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오랜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이해를 배워가는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성급하게 침묵을 끝내려 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열흘쯤 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응대했다.


그렇게 우리의 침묵은 끝났다.


남편은 여전히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은 변화가 하나 있었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이 내게 어떤 말을 할 때
내가 가장 서운해하는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30년 동안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대답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질문이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그리고 아주 조금,
기대가 생겼다.


어제는
내가 사진 촬영을 다니는 모임에
남편을 함께 데리고 나갔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예전과 달리 남편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내 입장을 먼저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무사히 잘 지나갔구나.


그래서인지
요즘 집 안의 공기는
예전보다 조금 가볍다.

아마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졸혼#이혼#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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