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화사랑..에필로그

오래된 이름, 현우

by 리치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일곱 살 딸아이의 이비인후과 치료 때문에 대학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 병원에는 여고 동창이면서 현우의 의대 동문이던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다.

딸의 치료를 위해 간 길에, 그 친구도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이름이 들려왔다.

현우.

그때까지도 내가 현우를 만났던 사실을 모르던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현우? 지금 여기 근무해.”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만나볼까.
그냥 돌아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외래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현우를 먼저 찾았던 기억이다.


“혹시 현우 선생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잠시 후 현우가 나타났다.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딸아이 손을 잡고 이비인후과 진료실까지 데려다주며
자신을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아직 결혼 안 했어?”

현우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응… 너만 한 사람이 없어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그 한마디.


현우에게
나는 젊은 날의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현우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해 주었던
넉넉한 품의 한 살 연하의 연인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충혈된 눈과 침 묻은 얼굴을 보며 웃었던 날,

내 코트 앞섶에 튄 불똥을 보며 다이아 반지를 약속했던 날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현우와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현우가 자신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럼에도 내가 그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더라면.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구멍 난 모직 코트도,

현우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던 〈이슬에게, 마크〉라고 적힌 책도,

이제는 빛바랜 추억과 함께 나의 옷장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스스로 빛을 내던 ‘은어’처럼 반짝였다는 것을,

누군가는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보며
나의 등대가 되어 주었다는 것만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나의 가장 푸르고 서툴렀던 시절의 연애는 조용히 끝이 났지만,

그 시절 내가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받았다는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나를 조용히 지탱해 주는 힘으로 남아 있다.


이제야
나는 그 시절을 따뜻한 마음으로 떠올린다.


그의 행복을 기원하며

끝내 전하지 못했던 인사를 건넨다.

안녕, 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