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키운 게 아니라, 제 딸이 키운 애거든요.

산책길에서 시작되는 변명

by 리치

이름은 밀키. 이름처럼 우유 빛깔 하얀 털을 가진,

겉보기엔 세상 순해 보이는 말티즈다.

이 아이가 우리 집에 오기까지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독립한 딸아이가 절대로 고양이는 키우지 않겠노라 약속해 놓고는,

길 위에서 만난 녀석들을 하나둘 슬쩍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졸지에 고양이 세 마리 틈에 끼어 살게 된 밀키는

대장 고양이 ‘로빈’에게 매번 얻어맞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보다 못한 내가 딸을 설득해 밀키를 데려오게 되었다.


어릴 때만 해도 참 유순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밀키는 조금 ‘유별난’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심한 분리불안은 기본이고,

산책길에 다른 개나 고양이만 마주치면

제 분에 못 이겨 빙글빙글 돌며 짖어대기 일쑤다.

유치원도 보내보고 TV 속 전문가의 조언도

금과옥조처럼 따르며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애견 놀이터에만 가면 밀키는 여전히 통제 불능의 사고뭉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변 보호자들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변명처럼 늘어놓곤 한다.


고양이한테 맞으며 지내서 그렇다느니,

어릴 때 개한테 물린 트라우마가 있다느니 하는

구구절절한 설명 끝에는 항상 같은 문장이 붙는다.

사실 제가 키운 게 아니라, 제 딸이 키운 애거든요.”


가끔은 밀키 목에

이름표라도 하나 더 달아줘야 하는 것 아닐까

피식 웃을 때도 있다.

‘이 애는 제가 처음부터 키운 애가 아닙니다.’


사실 내 마음 한구석엔

‘강아지의 성품은 보호자를 닮는다’는 말을 꽤 깊이 믿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밀키가 유난히 예민하게 굴 때마다,

혹시 사람들에게 내 예민한 모습이 들키는 건 아닐까 싶어

서둘러 방어막을 쳤던 것 같다.


내 체면을 지키기 위해,

굳이 딸의 책임을 강조하며 밀키와의 거리를 두려 했던

내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참 속 보이고 우습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밀키의 저 유난스러운 성격 안에는 딸의 습관도,

그리고 지난 4년을 함께 보낸 나의 모습도 공평하게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밀키는
동네에서 유명한 강아지가 되었다.


이름은 밀키.
그리고 별명은,“딸이 키운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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