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근무하던 항공사는 단 한 곳뿐이었다.
수직꼬리에 선명한 푸른 고니 마크가 새겨진 비행기.
객실 안에 'Welcome to my world'가 랜딩 곡으로 잔잔히 울려 퍼지던,
낭만으로 빛나던 시절, 나는 ‘하늘을 나는 스튜어디스’였다.
지금도 그 곡의 멜로디가 흐르면 젊은 날의 활주로가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유니폼 안에서 심장이 조용히 떨렸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채, 첫 이륙을 맞던 순간.
비행은 끝났지만 상승의 감각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그 시절, 공항 도착장에는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랜딩 곡이 흐르면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지금도 그 멜로디를 들으면 젊은 날의 나를 떠올린다고 한다.
스물셋, 사회로 나가는 문턱은 높았다.
두 달에 걸친 여섯 번의 입사 시험을 치러야 했고, 대학 4학년을 마치기 무섭게
혹독한 입사 교육이 시작되었다.
3개월간 이어진 그 시간은 단순히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물셋의 내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낼 '단단한 힘'을 길러준 통과 의례와도 같았다.
김포공항에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에 살던 나는 매일 새벽 네 시에 몸을 일으켰다.
캄캄한 새벽공기를 뚫고 통근버스에 올라타 하루 종일 교육을 받고,
다시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
몸은 부서질 듯 빡빡하고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견고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늘 '예외'와의 싸움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 학기가 되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형제 수를 물으셨다.
"형제가 몇 명이니?" 손을 든 아이들의 숫자가 하나둘 올라가다 대개 여섯, 많게는 일곱 명에서 멈췄다.
"더 있는 사람 없지?"라는 물음이 떨어지면, 나는 숙명처럼 '예외'가 되어 조용히 손을 들어야 했다.
"저요. 아홉 명이요.".......
원치 않는 주목을 받으며 쑥스러워하던 그 아이는,
입사 교육기간 가정환경 제출서류 앞에서도 다시 한번 망설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2남 7녀'라고 무미건조하게 적는 대신,
작은 장난기를 발휘해 보기로 했다.
딸, 딸, 딸, 딸, 딸, 딸, 아들, (딸), 아들.
길게 나열된 가족의 이름들 사이, 여덟 번째 '딸'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굳이 목소리를 높여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나만의 수줍은 표식이었다.
그 작은 동그라미는 동료들의 웃음을 불러냈고,
나는 그제야 ‘예외’가 아닌 ‘이야기’가 되었다.
드라마 《팔도강산》속 막내딸이 스튜어디스가 되어 부모님을 해외여행 보내드리던 장면.
그 화면을 보며 ‘장래희망’ 란에 또박또박 적어 넣었던 딸 부잣집 막내의 꿈.
희망을 적은 작은 글씨는 푸른 고니의 날개를 타고 조용히 하늘로 스며들었다.
아홉 남매 중 여덟 번째 딸이었던 나는 그 하늘 한편에 내 이름을 얹어두었다.
누군가를 위해 날아오르겠다는 마음도,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작은 탈출이었음을..
나는 효도를 꿈꾸는 척하며 실은 나만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xGFYKpUXk9 Q? si=27Y4_7 su4 o84 FI1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