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준 아픔과, 우리를 성장하게 한 시간
얼마 전부터 아이가 부쩍 자라며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진실을 이제는 아이에게 말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진실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숨기는 것이 아이의 마음에 더 깊은 균열을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 사이의 신뢰가 깊고 강할수록 진실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했다.
어느 조용한 날,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천천히 말했다.
“엄마랑 아빠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너를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빠의 마음이 변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 그 일로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겪었고 결국 우리는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네가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많이 바뀔 수도 있고, 혹은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동안 네가 상처받거나 혼란스러울까 봐 말을 아꼈지만, 이제는 네가 이해할 만큼 자라주었고, 무엇보다 우리 사이의 신뢰를 생각할 때 계속 숨기는 건 나중에 네가 더 큰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엄마는 생각했단다.”
아이의 표정은 뜻밖에도 침착하고 담담했다.
“엄마, 사실 나 알고 있었어. 아빠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걸. 나랑 있을 때도 항상 누군가의 연락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는 늘 밀리는 느낌이었어. 할머니랑 고모가 하는 이야기도 우연히 들었어."
아이는 말을 이었다.
“아빠는 나한테 엄마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다고 했었어. 엄마가 돈 문제로 아빠를 괴롭힌다고도 했고. 그래서 아빠가 미워졌어.”
아이의 말에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그 모든 혼란을 혼자 견뎠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는 아이가 겪은 혼란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제는 그 짐을 혼자 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나는 아이가 아빠와 함께 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좀 서운했어. 아빠는 늘 다른 사람의 연락을 먼저 받았으니까. 나는 밀리는 느낌이었고.”
아이는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아? 힘들지 않아?”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제는 기대도 없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아.”
아이는 담담히 말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내 가슴을 더 깊게 찔렀다. 아이의 기억이 조금 다르거나 명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아이가 느꼈던 서운함만큼은 분명했다. 그 담담함 속에서 아이가 혼자 단단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말했다.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너와 아빠의 관계를 정말 소중히 생각했어. 아빠가 약속한 양육비를 받은 것도 돈 때문이 아니라, 네가 자라서 아빠를 떠올릴 때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아빠와 그렇지 않은 아빠는 분명히 다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사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미 내게 전남편은 공포와 혐오가 뒤섞인 존재였다. 연락하는 것조차 두렵고 얼굴을 보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웠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청심환을 삼키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그것은 단순한 양육비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겠다는 나의 굳은 결심이기도 했다.
그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아이가 내게 건넨 한마디로 알았다.
“엄마가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엄마한테 정말 실망했을 거야. 엄마가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정말 고마워, 엄마.”
아이의 그 말이 내게 가장 큰 위로였다.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이혼은 단지 좋고 나쁨으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와 아이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성장해가는 긴 여정이었다. 우리는 그 여정 속에서 상처를 마주했고, 또 서로를 이해하며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가 삶에서 마주할 어떤 흔들림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내 온 힘을 다해 곁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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