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품
나는 글을 쓰며 모순적인 감정을 마주한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하면서도, 절대 읽지 않았으면 하는 양가적 감정.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썼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읽었다고 해도 '내가' 이 글을 썼다는 것을 몰랐으면 하고 바란다. 이 글은 상대가 읽을 수 없을 때에 가치 있는 것이니까.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사랑의 단상]
그저 그런 나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기 힘들지만, 나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평균에도 못 미치고, 아주 못나 보이기까지 한다. 올해는 여러 부분에서 나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하루키를 따라 '나라는 인간의 불쌍한 대차대조표' 를 그려본다. 차변에는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점을 적는다. 키가 크고,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만족의 역치가 낮고.. 죄다 정량적이지 못한 모호한 것들이다. 이제 대변에 남들보다 조금, 또는 많이 못난 것을 적어본다. 고민 않고 다섯가지를 적어 내렸다. 차변을 쓸 때에는 한참을 고민했는데 말이다.
이렇듯 나는 너무나 허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완벽한 남자에 자꾸 눈을 돌렸다. 아니,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남자를 찾았다.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내게 충성하는 남자. 우리는 모두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다면적으로 보았을 때 둘 모두가 서로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윈윈하는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나보다 어느 한구석이라도 나은 사람을 갈구할 수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그를 사랑하면서, 그가 가진 양면성을 이해하는 것. 상대의 빛나는 모습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것. 장점 뒤에 숨은 본질을 이해하는 것. ‘너는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어?‘는 결국, 나의 장점 뒤의 단점까지 포용해 줄 수 있냐는 물음이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의 못난 모습을 포용하는 것 보다, 나의 못난 모습을 포용하는 일이 더 어려울 것 같다. 이 질문에 응, 이라고 끄덕일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결함이나 결점은 일일이 세자면 끝이 없다. 그래도 좋은 점은 조금은 있기 마련이고, 가진 것만으로 어떻게 참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울 앞에서 발가벗고 내 육체적인 단점을 열거했을 때의 약간 한심한 감각이 스쳤던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상처처럼 남아있다.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고, 장점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의 불쌍한 대차대조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저 그런대로 괜찮은 나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나에 대한 태도만이 아니다. 그저 그런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의 그저 그런, 부족한 모습도 수용할 줄 안다. 반면 나의 평범한 모습과 일상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평범함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온전한 사랑의 이해]
부조화
나는 보통 조화로운 그의 모습을 사랑한다. 꼭 맞게 어울리는 것을 들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나를 사랑한 사람들은 나의 조화보다는 부조화를 사랑했다. 나의 의외성에 가치를 뒀다. 그건 당신에게 '안 어울려요'로 시작해 '어울려요'로 흘러가는 식이다. 나의 부조화는 긍정적인 것이다. 내가 가진 필살기는 어쩌면 이 부조화인지도 모르겠다. 내게서 부조화를 느꼈다는 것은 그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봤다는 의미이다.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누구 옆에 서도 이것만큼은 내가 당신보다 많이 가지고 있어요, 할 수 있는 것. 아직 완전한 그것을 찾지는 못했지만, 줄 수 있는 것과 별개로 주고 싶은 것은 있다. 그가 나의 부조화에서 나의 그것을 찾아주었으면.
반짝이는 눈빛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입사 교육을 가서 멘토 선배들의 눈빛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직장인이 미치도록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는 미치도록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다. 눈빛과 태도가 일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나의 눈빛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비쳤을까?
이미지의 장례
롤랑의 말대로 나도 인연을 정리하며 이미지의 장례를 치른다. 수, 목, 금, 토, 4일쯤 지나니 이제 받아들여진다. 상황을 부정하고, 이유를 궁금해하고, 후회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나며 이 모든 것이 나의 업보인가.. 하는 생각이 정점을 찍고 나면 감정도 한 풀이 꺾인다. 왜 장례식은 3일장일까? 옛 전통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백이 사망한 지 3일째 되는 날 이승을 완전히 떠난다고 믿었다. 선조들의 지혜다. 3일이면 당장에 떠오를 수 있는 모든 미련과 후회가 머리를 뒤집어 엎고 잠잠해지는 시간인 것 같다. 모든 것은 일어나야 해서 일어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을 경험 삼아, 마주할 다른 인연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
살면서 꼭 해야 할 것 세가지. 거절당하는 연습, 포기하는 연습, 인정받지 못해도 신경 쓰지 않는 연습. 한마디로,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익숙해지기.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익숙해지라니. 한참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래도 조금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어쩌면 결국에는 이렇게 단정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마 인생이 아닐까, 하고. 우리는 그저 있는 그대로 송두리째, 이유도 모른 채 그 어떤 경위로 아랑곳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