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퇴근길 덕분에 연말다운 연말을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모두들 무탈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저는 올해 꽤 자주 멈췄습니다. 해결해야 할 일들에 가로막힌 탓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정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멈춰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남겨둔 기록 덕분에 돌아볼 것도 많습니다. 신년목표로 세웠던 체중관리와 저축, 이직, 학점관리 등 큰 목표를 모두 이루었습니다. 작게는 비뚜러짐이 많았지만, 큰 방향에서는 올곧게 잘 걸어온 걸까요.
작년의 저는 많이 불안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올해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한 다짐도 보입니다. 다행히 지금의 제 모습이 작년보다는 더 마음에 듭니다. 2024년 제 키워드는 불안이었는데요, 올해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요?
꿈과 정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꼭 꿈을 묻습니다. 기자, 레이서, 테니스 선수, 소방관... 그를 테니스 코트에 세워보고, 소방복을 입혀봅니다. 상대의 꿈을 물었으니 저도 알려줘야겠죠. 제 꿈은 작가, 그리고 좋은 기획자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의 눈에는 반짝임이 있습니다. 저도 눈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글을 쓰고 사람을 설득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제가 이미 꿈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덕분에 기획을 업으로 삼은 지 4년이 다 되어가도록 제 안에는 초심이 푸르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멋지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에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좋은 기획이란 무엇일까, 또 나는 어떤 기획자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매일을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더 근사한, 더 뾰족한 문장을 찾아 저를 설명할 수 있길 바랍니다.
크고 또렷한 꿈을 향해 가는 길은 저를 작아지게 만듭니다. 제가 이 세계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진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벽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이유는 제 가슴이 뛰기 때문입니다. 롯데그룹의 사명이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를 로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신격호 회장은 롯데가 그녀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길 소망했다고 합니다.
베르테르는 그의 여인 샤롯데에 대한 사랑에 있어 정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정열 때문에 그는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할 때도 정열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지만, 정열이 없으면 흥미도 없어지고 일의 능률도 없어집니다. 뜨거운 정열을 갖고 업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ㅣ신격호
저 역시 모든 일의 기본은 애정과 정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주어진 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멋지게 해내고 싶습니다. 애정을 쏟아야 좋은 산출물이 나오기에 구성원들을, 우리 회사를, 또 클라이언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미련해 보일지라도 그 미련함 덕분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저는 이 마음가짐 덕분에 회사 밖에서도 제법 홀로 설 수 있는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이 정열을 바탕으로 신년에는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좋은 해답을 내어놓는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Keep It Simple, Stupid!
아까운 관계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마주 보고 앉아 햄버거를 먹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온 세상이 우중충한데도 둘은 행복해 보였어요. '나도 저렇게 마주 앉을 사람을 찾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해 동안 제 앞에 자리해 준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저승사자 같은 남자 셋과 하얗고 엄청 큰 남자 하나. 유난히 마주 앉은 순간보다 나란히 걷을 때가 기억에 남는 그와, 시끄러운 바에서 하얗고 반듯한 이마를 구기며 집중하던 그가 유독 선명하네요. 감사는 모두에게 공평히 전합니다.
만남이 있었다는 건 그만큼의 이별도 있었다는 뜻이겠죠. 눈물이 많은 저는 이별의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눈물을 쏟았습니다. 짧은 만남에도 이별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동안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애 썼고,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을 놓지 못했고, 끝내 너무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이별을 거치며 조금은 의연해고, 관계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만나온 남자들은 결이 비슷했어요. 자존심이 세고 야망이 큰 덕분에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많았어요. 덕분에 다양한 경험과 배움이 있는 재미있는 연애였지만 가끔은 감정적으로 허전했습니다. 올해는 운 좋게도 전혀 다른 분을 만나봤어요. 제가 읽는 책을 따라 읽고 저와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주는 다정한 사람. 이렇게 좋아하는 걸 왜 안 해줬지?라는 그의 물음에 부끄러워졌어요.
지난 겨울, 붕어빵을 사 오다 회사 앞에서 그를 마주쳤습니다. 외근을 가는 길인지 기다란 팔을 휘적이며 지나가던 그에게 붕어빵을 하나 나누어 줄까 잠시 고민하다 말았어요. 후리스를 입은 제 모습이 부끄러웠거든요. 데이트에도 잘만 입고 나가던 후리스가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요. 그때 그냥 붕어빵을 봉지째 줘버릴걸.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것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마저도요. 연애는 곧잘 해왔지만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렇게 망설여지기는 처음이었어요. 이직을 준비하며 저는 생전 가본 적도 없는 대전의 에너지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어요. 그의 인바디 점수가 91점 이어서도 아니고, 제 배경화면과 꼭 닮은 외모도 전부는 아니었어요. 그는 계속 저를 알아봐주고 이해해줬거든요.
여러 만남과 이별을 거치며 느낀 건 뜻밖의 것이었어요. 저는 늘 제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었어요. 어제보다 더 나은, 어쩌면 좋은 사람이 되고 있기에 제 곁에는 더 근사한 사람이 자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인연이라는 것도 다른 모든 것들처럼 내 것이면 오게 될 테고, 오지 않는다면 내 것이 아닌 것이니까요.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할 사람, 딱 한 명만 남으면 되는 일인걸요.
수많은 만남의 끝에는 서로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제게 방명록이 있다면 가장 많이 쓰일 말은 단연 '독특해'가 될 것입니다. 이 독특함이야 말로 저라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임을 이제는 받아들였습니다. 내년의 제게 또다시 행운이 온다면, 다시 한 번 독특하다는 말로 저를 담기 아까워해 줄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랑을 해볼 수 있길 바라봅니다.
거친 파도가 훌륭한 선원을 만든다.
불어오는 바람을 탓하는 건 미련한 일입니다. 바람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더 열심히 노를 젓자는 마음으로 일을 벌이고 수습하길 반복하며 신년목표를 이루어 왔습니다. 일기장 속의 저는 하루하루 크고 작은 일들로 괴롭고 외로웠지만 얻은 것이 참 많다고 생각되는 2025년입니다.
저는 올해 쉬지 않고 많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손조차 닿지 않을 것 같던 것들에 온 몸을 뻗고 수없이 넘어졌지만 온 힘을 다해 두드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끝없는 두드림을 통해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제 한계치과 목표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어요.
모든 선택은 후회를 남기지만 결국은 각자의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 할 지라도 중요한 건 내 의지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순간의 선택에 충실하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만이 후회를 줄이는 길이겠죠.
반년동안 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틀이 약해졌다고 할까요.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이 흐려졌습니다. 조금 다른 목소리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던 저는 끄덕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스스로의 모나고 못난 모습을 품어주려 노력하고 애쓰는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년의 저에게도 숙제가 필요합니다. 올해는 제 세계가 넓어진 만큼 양감이 줄어들었으니 내년에는 양감을 쌓아보겠습니다.
2026년에는 이런 태도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기.
부끄러워하지 않기.
의심하지 않기.
미워하지 않기.
모두의 신년에는 더 많은 배움과 사랑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아끼는 것들이 많아지는 한 해가 되시길,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아끼지 말고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만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하염없이 사라지는 것이니
지나가버린 것은 그리움이 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