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도시락을 챙긴 지 벌써 4달째다. 불편한 사람과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에 내 점심시간을 쓰기 싫다는 마음에 시작했지만, 대충 때우자는 처음 마음가짐과 달리 도시락을 챙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날 저녁 20분이면 샌드위치부터 샐러드, 유부초밥, 주먹밥까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도시락을 챙겨 다니다 보니 식비가 많이 줄었다. 요즘 밥 값이 보통이 아니다.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인플레이션에 물가가 폭등하니 음식점은 메뉴판의 앞자리를 고쳐 쓰고 있다. 한 끼에 만원이라고 쳐도 일주일이면 5만 원, 한 달이면 20만 원이다. 도시락은 한 달에 10만 원이면 충분하다.
도시락이 내 지갑만 위로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를 위해 챙긴 식사를 먹는 것이야말로 빡빡한 업무 시간 중에 생기는 유일한 내 시간이다. 이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자는 시간을 줄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심지어 점심은 매일 먹어야 하니 강의 듣기를 미룰 수도 없다.
누군가는 시간이 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돈을 배로 버는 셈이다.
추가로 약속을 거절할 때에도 아주 적절한 구실이 된다. 저녁에는 도시락을 싸야 한다고, 점심에는 도시락을 챙겨와서 어렵다고 거절할 수 있다. 나 같은 아싸에게 이만한 치트키가 없다.
오늘도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 직장인들에게 내일 하루는 도시락으로 나를 챙겨보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