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4년이 되었네요. 부끄럽지만 글은 몇 개 없습니다.
그래도 브런치를 통해 소중한 인연도 생기고, 좋은 제의도 받아보고 여러모로 제게는 소중한 플랫폼입니다.
누군가 꿈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이제 누가 꿈을 묻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묻는다면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던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던가 하는 소망 정도로 대신해 볼 수 있을까요?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글은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면서 느는 것 같아요. 읽히는 글을 써 본 사람의 글은 다르거든요. 최근 유병욱 카피라이터님의 '인생의 해상도'를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이렇게 잘 넘어가는 책이라니, 카피라이터의 글은 다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설날을 맞아 뒤늦은 2024년 회고를 작성해 봅니다. 그동안 저장해 두었던 글들을 기워서 그럴듯한 글 하나를 완성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제가 아끼던 도시락 글을 날려버렸습니다. 보관을 눌러야 하는데 삭제를 눌렀어요. 글을 쓰기 전부터 제 자신에게 실망했지만 앉았으니 글은 써야죠.
2024년을 보내며
불안
작년에는 유독 글이 써지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로 힘들었고, 불안함이 익숙해졌다. 풀리지 않을 문제들을 곱씹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슬퍼하지 못했다. 추위를 잘 타지 않던 나는 가을바람에 패딩을 꺼내 입었다. 어깨가 자주 결렸다. 추워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깨가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힘을 준다고 해서 덜 추운 것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은 근육 탓에 온몸이 뻐근했다. 의식적으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다 문득 지금껏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싶었다. 찬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긴장하며 힘을 잔뜩 주고 살았다.
연애
나는 쿨하지 못한 사람이다. 관계에 미련하다. 정말 잘 맞았던 연인과의 연애를 끝냈고, 한결같은 사람과 짧은 연애를 했다. 몇 번의 소개팅을 통해 나의 미숙한 점을 깨닫기도 했다. 내가 넘겨버릴 이 인연이, 정말 나와 꼭 맞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어 몇 번씩 돌아봤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모아 봤다. 보여주기 두려워했던 나의 큰 결점들을 감싸 안아주던, 내게 가장 좋은 것만을 해주던,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워주던, 숨이 넘어가게 웃겨주던, 내가 먹고 싶다던 커피를 들고 단숨에 달려오던, 반듯하고 확실한 미래를 끝없이 그려주던 모습들. 왜 지난 연인을 떠올리면 좋은 모습만 기억되는 걸까? 나쁜 모습이었던 적이 없다. 추억 미화의 부작용이다.
발악
소개팅을 하며 확실히 느낀 점은, 연애는 발악을 해야 할 수 있다는 거다. 정말 말 그대로 발악이 필요하다. 미친 듯이 자기 관리를 하고 소개팅을 해줘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대가 나를 마음에 쏙 들어하지 않아도, 내가 마음이 있다면 자존심을 내려둘 수 있어야 한다. 난 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는 사람이기에, 나를 스쳐가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붙잡았다. 신년에는 이 발악의 결실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만함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그의 더 나은 모습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착각. 또, 누군가를 위해 내가 기꺼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바꿀 수 없다. 나조차도 쉽게 바꿀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기부여 정도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걸까?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아직도 연애에는 잼병이다. 사랑에 빠질 자신은 있지만 관계를 지켜나갈 현명함이 부족하다.
여행
성인이 되고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두 시간도 안 걸리는 일본의 작은 도시였다. 어떤 관광지도 가지 않고 공원을 산책하고 마트를 구경하고 커피를 들고 동네를 걸었다. 이른 휴대폰을 두고 호텔 건물만 기억한 채 혼자 동네를 한 시간 정도 누볐다. 작은 도시라 두리번대면 묵고 있는 호텔이 한눈에 보였다. 실컷 뛰고 호텔로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정
회사 안팎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늘 업무에 과몰입 상태였기에 성과가 조금만 안 나와도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피드백이 좋지 않으면 컨디션이 많이 떨어졌다. 산출물로 이야기하는 게 프로라는데 아직 그 레벨은 아닌듯하다. 일단 내 노력과 능력을 알아봐 주길 원했다. 하지만 내가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또 잘 해내고 있다는 걸 인정해 주시는 상사분들 덕분에 다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언제나 스스로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스펙적인 제약 앞에서 움츠러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을 보완하고 나면 정말 지금의 한계를 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프로가 되고 싶다. 노력이 아닌 산출물로 말하는 프로가 되고 싶다.
충동
나는 선택에 있어 충동적이고, 순간의 욕구에 솔직한 사람이다. 지인들은 다들 전혀 아니라고 하지만 늘 억누르고 있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얼떨결에 가지런한 방향으로, 또 그럴듯하게 쌓여온 것들을 발판 삼아 열심히 뛰어왔지만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선택이 필요함을 느낀다.
선택을 신중히 하고 싶어서 메모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말들을 저장하고, 사소한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아 적고, 뱉은 말을 복기한다. 대답이 막혔던 물음들도 적어두고 생각한다. 예상 질문에 답변을 외우는 면접 준비와 비슷하다. 이렇게 시작한 다이어리가 34페이지를 넘어간다. 하나하나 적어내니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신중해지기로 약속한다.
돌아보니 많은 상황과 감정들이 저를 성장시킨 한 해였습니다. 2023년의 끝에서 저는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며 후련함을 당해의 키워드로 꼽았는데, 슬프게도 2024년의 키워드는 불안이 되었습니다.
사실 정말 잘해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정말 불안했고, 급했고, 그래서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늘 마음이 앞서는 사람인가 봅니다. 지금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며, 아니 시작을 준비하며 내가 너무 성급하지 않은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정말, 정말 잘해보고 싶어서요. 어리숙함과 성급함이 관계를 그르치지 않도록 제 감정을 조절하고 있어요. 이것도 연습하면 익숙해지는 거겠죠.
신년부터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멈췄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불안함이 가르쳐준 것들을 제대로 새기고, 올해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겠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더라도 저는 더 나아질 제 모습이 기대됩니다.
성공은 경험과 성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잃어버린 것의 뒷면에는 언제나 얻게 될 새로운 수확이 있다.
올해는 소홀히 했던 독서와 기록에 집중하고, 건강한 자기 돌봄에 시간을 쏟으려고 합니다. 수기 기록이 익숙해지면 브런치도 다시 자주 찾아올 생각입니다. 볼품없는 글이지만 꾸준한 독자가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열심히 달린 덕분에 회사 밖에서 재능을 살려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온전히 내 재능만으로 돈을 벌다니, 글을 쓰고 문서를 만드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에 조금은 자부심을 느껴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새해 계획도 궁금하네요. 진짜 새해는 원래 설부터잖아요? 모든 분들의 신년에는 불안이 지나고 안정이 찾아오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