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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틀 Dec 30. 2023

2023년을 보내며

매년 마지막 글에는 '벌써'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은 너무나 빠르고 한 해의 끝에서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2023년만큼은 아쉬움 없이 배움과 감사함으로 가득한 해였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하반기에는 거의 들어와 보지 못한 브런치지만 올해를 되돌아보며 느낀 바를 몇 가지를 적어본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내가 속한 팀은 지금껏 많으면 3명, 적으면 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턴이 들어오며 얼추 네 명으로 구색이 맞춰졌지만 실무진은 기껏해야 2명이 다였다. 이 때문에 항상 손이 부족하고 실무진 1명이 감당해야 할 업무가 중구난방이었다. 하지만 실무진이 적기에 훨씬 다양한 업무들을 접해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업무에 특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콘텐츠 제작과 행사 기획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콘텐츠 제작은 작년부터 해왔던 일이지만, 올해처럼 큰 행사를 진행해 볼 기회는 처음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해 진행했던 세 번의 행사는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한 끗을 잘 챙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난 평소에도 남들을 잘 챙기는 성격이다. 상대가 어느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사소한 포인트들을 잘 캐치한다. 또, 예쁘게 꾸미고 정갈하게 세팅하는 것을 잘해서 적은 예산으로도 맵시 있게 행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며 앞에 나설 기회도 많았다. 마이크를 잡고 네 시간을 떠들기도 하고, 해외 CEO분들을 모시고 기업 탐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대는 걸 싫어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물 만난 고기처럼 나대는 내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내 적성을 찾게 됐다.


요즘 MZ세대 때문에 기성세대에는 '요요요' 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업무에 대한 명확한 지시를 바라는 것이라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업무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가 반영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MZ세대들은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로 '새로운 경험을 통한 새로운 시각'을 꼽는다. 이 이론은 업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해보지 않으면 내가 그 일을 잘할지 못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린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갔던 길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길에서 나의 특기를 찾아내기도 한다. 새로운 경험은 사무실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업무에는 애정을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월요일이 되면 발걸음이 가볍고, 3일 이상 쉬면 회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때문인지 한 번도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챙기고자 했던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관련 기사를 읽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ESG의 컨택 포인트로 반짝였다. 올해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도, 고장 난 마우스를 버리려다 문득 생각나 PC 폐기 프로세스를 확인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교육 프로그램 역시 현업 담당자들과 매일 같이 소통한 덕분에 만족도 높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이다. 가끔은 번아웃이 오고 지쳐도 결국은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괴리에서 오는 고통이어야 하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 지에서 오는 고통이어선 안된다. Social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임직원들의 업무 및 조직 만족도 이슈에 접근할 때 역시 그 본질을 알아야 한다. 많이들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회사는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한 임금을 지불받는 곳이다. 사람이 좋아도 일이 맞지 않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조직에 융화되지 못하고, 저성과자는 조직에 짐이 될 수밖에 없기에 결코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다.


요즘 바쁜 일이 모두 끝나고 찾아온 한가함과 함께 크고 작은 주변 소음들로 번아웃을 겪었다. 내년이 시작하기 전, 이 감정을 털어내고 싶어 적어본 단락이다. 3일 남은 연휴에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에 애정을 쏟아낼 준비를 해야겠다.



동갑내기 인턴과 함께한 6개월


올해 내게 가장 큰 변곡점이 된 것은 동갑내기 인턴의 입사였다.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그 친구의 말들로 인간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괴로웠고, 이게 내 학벌 콤플렉스로 인한 열등감 때문일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이 친구와 함께한 6개월은 내게 많은 깨달음과 배울 점을 남겼다.


'쪽팔리기 싫어서 잘해야지'

팀장님은 동갑내기에 동성이라 걱정되는 부분도 많지만, 그것보다 내가 자극받고 성장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처음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결국은 팀장님의 말씀이 맞았다. 그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꼈다. 선배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실수가 후배 앞에서는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인턴이 처음 입사한 7월에 내 목표는 '미팅 시 유의미한 질문 세 가지 하기‘였다.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더 악착같이 일하고, 일상적인 미팅을 들어가도 예상 질문과 답변을 메모장 빼곡히 적어갔다.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사소한 돌발상황까지 대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내 업무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저 이거 해보고 싶어요!"

항상 회사에서 내 자리는 안정적이지 못했고 나는 늘 팀장님께 '제가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동안 쉬지 않고 일했던 이유 역시 내가 쓸모없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도 눈치가 보여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주변에서 등 떠밀어도 거절당할까 두려워 별로 관심이 없다고 자리를 떠버렸다. 팀장님은 내가 아쉬운 소리를 못 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하셨는데, 그냥 난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인턴은 항상 주저 없이 손을 드는 타입이었다. '선배님, 저도 가는 건가요?', '팀장님 저도 하고 싶어요!' 처음엔 거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하나씩 얻어내는 걸 보면서 역시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는 거구나 싶었다. 아직도 부끄럽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나도 정말 해보고 싶은 일에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보고 있다. 내년엔 이 스킬이 더 필요한 해가 될 것 같아 걱정되지만 거절당하면 뭐. 집 와서 이불 킥 한 번 하면 그만이라는 걸 배웠다.

 

내게만 좋은 팀장님일 수는 없다.

인턴이 들어오고 가장 나를 괴롭게 했던 건 팀장님의 과한 봐주기였다. 지각부터 상습적인 자리 비우기, 습관성 반말과 갖은 업무 실수에도 팀장님은 세 달간 정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또, 인턴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다고 느꼈다. 출장이며 사외교육이며 업무보고까지 공유하는 팀장님을 보며 나는 늘 '과하다'라고 불평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팀장님은 내게도 과한 권한과 배려를 해주고 계셨다. 계약직인 내게도 항상 내가 부(副)가 될 일은 절대 없다며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셨다. 입사 초 내게 했던 실수를 인턴에게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신 모습에서도 질투가 아닌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고 느꼈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큰 오류는 상대방이 내게만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온다. 내게만 친절한 사람 같은 건 없다. 만약 상대방이 내게만 과하게 친절하다면 사심이 있는 것이니 더 조심해야 할 뿐이다.


잔소리에는 애정이 담겨있다.

말 못 할 여러 사건을 겪으며 이 친구가 밉긴 해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내 눈에 보이는 모난 부분들을 다른 사람이 알아챌까 봐, 그래서 이 친구가 상처받게 될까 봐 걱정됐다. 내가 사회초년생 때 겪었던 일들을 이 친구는 겪지 않았으면 했다. 딱 이것만, 하나만 고쳤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가끔씩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최소 하루 이틀은 고민하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 과정에서 선배들이 내게 해주었던 잔소리들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어렵게 꺼낸 이야기였을까. 애정이 없다면 뒤에서나 하고 말았을 말들을 정제하고 다듬어 건네준 선배들의 마음을 알게 됐다.




2023년을 끝으로 내게 남은 감정은 후련함이다.

글을 마칠 때쯤이 되니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무사히 한 해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2024년도 무탈하길 바라본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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