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다.
삶이 쉽지 않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렇게 생겨먹었기에 사는 동안 수도 없이 실수하고 실패할 거다. 나에게 중요한 건 이런 실수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이다. 그 점에서 '자기합리화와 변명'은 최악의 대처라고 할 것이다. 이런 대처법으로는 실수와 실패로부터 하나도 없을 것이 없고, 오히려 뻔한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지켜본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내 곁을 떠나갈 테니까 말이다.
친구여, 나는 늘 실수하고 실패한다. 배가 부를 만큼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실수하고 실패한다. 다행인 것은 나 뿐 아니라 내 옆 사람도 마찬가지고, 내 뒷사람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실수하고 실패하거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인정할 줄 알게 되면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다. 자기합리화와 변명할 구실을 찾느라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고, '임기응변'이라는 좋은 말을 쓸데 없는 곳에 쓸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회피한다면 '배울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젊을 때도 부족하고 아쉬운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사람들은 '배우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걸 나이들면 알게 된다. 실패하고 실수 했거든, 인정하자. 그게 가장 좋은 삶을 사는 현명한 방법이다.
내가 저지른(어쩌면 이러한 부정적인 동사 때문에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기 어려운지도 모르지만) 실수와 실패를 인정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용기'를 내야 하는데, 바로 '고백'이다. 내가 인정한 내 실수와 실패에 대해 인정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고백일텐데, 이게 또 '인정하기'만큼이나 쉽지 않다. 특히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일삼던 사람이나 고백하기를 좀처럼 해 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한테 '고백'은 죽어라고 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고백'이 힘이 센지도 모른다. '고백'을 하면 '이해와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실수와 실패'를 달고 살게 되는데 '자기합리화와 변명'으로 이것들을 회피하다 보면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우고 깨닫는 기회를 놓쳐버려서 오히려 자기 인생에 해가 된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고백한다면 이해와 용서를 얻을 수 있다.
너도 나도 저지르는 '실수와 실패'를 했거든, 피하려들지 말고 인정하고 고백하자.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 앞으로 같은 실수와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노력하면 필히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고백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마지막 히든 카드가 있는데 바로 '용기를 내라'일 것이다. 용기 중에 가장 훌륭한 용기는 바로 '고백하는 용기'라는 걸, 잊지 말자.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