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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Apr 15. 2024

내 아이의 첫 독서록, 그림 독서록으로 시작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초등독서 로드맵(15)

- 책을 읽은 한 줄의 소감, 독서록 쓰기




앞선 글에서 ‘아이가 책을 읽으면, 읽고 난 소감을 말하게 하라’라고 말했어요. 학습면에서 책 읽기가 인풋(input)이라면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는 건 아웃풋(output)이에요. 뇌과학적 측면에서 아이가 책을 읽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내용을 들으며 눈으로 활자를 읽고(인풋 과정), 머리로 상상하고 이해하고 기억한 후(이해 과정), 책을 읽은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쓰지요(아웃풋 과정).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책을 읽기만 하고 느낌을 말하지 않으면, 책 읽기는 나중에 ‘취미’가 되고 맙니다. 아이가 책을 읽었으면 읽고 난 내용과 느낌을 스스로 말하고, 글로 쓸 줄 알아야 해요. 하버드 대학생들이 졸업한 후 대학시절 가장 아쉬워한 것이 ‘대학생활 동안 글쓰기를 더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에 나온 뒤 책 읽기만큼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배우고 익히고 느낀 점을 내 생각으로 정리해서 말로 표현하고, 글로 쓸 때 책 읽기는 완성됩니다. 책 읽는 것만큼 독서록을 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죠. 그럼, ‘독서록 쓰기’에 대해 살펴볼까요? 


아이가 글을 배우기 전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시기에는 독서록도 대신 작성해 주세요. 이 시기의 독서록 쓰기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다이어리처럼 날짜가 구분된 작은 노트를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난 뒤 날짜와 책 제목, 지은이를 적고 아이가 ‘이 책이 어땠는지’ 말한 내용을 엄마 아빠가 대신 적어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2024년 5월 30일, 영희가 <백설공주>를 읽고 나서 ‘재미있었다’라고 말했어요> 라고 쓰는 거죠. 아이가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영희가 ‘백설공주는 정말 예쁘고, 마녀는 정말 무서웠어’라고 말했어요> 라고 덧붙여 쓰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한 권, 두 권, 열 권, 스무 권...꾸준히 읽어주고 아이가 말한 감상을 쓰다 보면 아이가 ‘책을 읽고 난 느낌들’이 점점 늘어나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어요. 





이렇게 독서노트에 기록하면 자칫 흩어져버릴 수 있는 아이의 느낌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내 아이의 독서 역사’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도 아이가 변함없이 짧게 대답한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절대로 초조해 하지 ㅇ않아도 됩니다. 아이는 이 단순한 과정을 통해 ‘책 읽고 난 느낌을 뭐라고 말할까?’를 고민하는 습관을 키우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책을 읽은 느낌을 점점 더 많이 말하는 아이를 만나게 될 겁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 크레용(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책을 읽은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도와주세요. 동물이나 사물을 그림으로 그리듯 책을 보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무렇게나 그려보라고 하는 겁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와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크레용을 손에 잡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도와주지 말고 중간에 끼어들어 “이건 뭘 그린 거야?” 하고 묻지도 마세요. 아이가 혼자서 충분히 생각하면서 그릴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세요. 아이가 펜을 내려놓고 다 그렸다고 하면 그 때 물어봐도 늦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제 아이는 여섯 살 이었는데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뽀로로 영상보기’에 한창 취해있을 때 였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그려보자고 하니 영상을 보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림책에 흥미를 갖더군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책을 읽은 내용과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 하니까 아이가 혼자 하는 것은 싫고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림책 속에 있는 내용 중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장면을 찾아보라 하고 아이가 고른 그림 위에 제가 습자지(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굵은 선을 따라 그렸습니다. 



선을 따라 차츰 그림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무척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이렇게 밑그림은 제가 완성하고 아이는 그 위에 색칠을 하도록 했더니 그림책에 있는 그림을 보며 같은 색으로 칠하면서 재밌어 했습니다. 

그 후 영어책을 포함한 그림책을 읽고 나서 그림 그리고 싶은 장면 그리기를 1년여 동안 함께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이 혼자서 습자지를 대고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할 정도로 이 과정을 놀이처럼 즐겼습니다. 





저는 이것을 ‘그림 독서록’이라고 하는데요, 아이는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력이 늘어나고 기억력도 좋아집니다. 또한 아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펜을 쥔 손의 소근육도 기를 수 있습니다.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주저하면 책에 있는 그림들 중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도 상관없습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마치 추상화처럼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마냥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거나 줄과 동그라미 몇 개 그려놓고 다 그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분명 그림책을 읽으며 본 사물의 색깔이나 모양을 자신의 느낌으로 표현한 만큼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의미의 그림이 됩니다. 


여기서 꼭 주의해야 할 점 하나는 아이가 그리는 그림과 색칠에 엄마 아빠가 간섭하지 말자는 겁니다. 아이의 그림에 부모의 생각이 들어가는 순간, 아이는 제 마음껏 그린다는 느낌이 사라져버려서 금방 싫증을 낼 테니까요. 

아이가 그림을 다 그렸다고 하면 그림 밑에 아이가 이야기한 책을 읽은 느낌을 엄마 아빠가 대신 적어주세요. 또 한글을 떼고 글을 쓰기 시작한 아이라면 그림을 그린 다음 아이가 직접 단어나 문장을 써놓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완성된 그림 독서록은 작성한 날짜와 책 제목 등을 기록해 따로 모아두면 나중에 훌륭한 독서록 노트가 됩니다. (그림독서록 양식은 책 부록에 있으니 참조하세요). 아이는 자신이 만든 독서기록을 보면서 글을 알기 전부터 부모와 함께 독서록을 써 왔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독서록은 글자 쓰기가 아니라 ‘생각 쓰기’라는 것도 배웁니다. 






아이가 책을 읽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아이가 한글을 깨쳤을 때 빛을 발해요. 글을 알기 전부터 그림 독서록을 쓰기 시작하면 쓰면 초등 글쓰기는 더욱 쉽고 자연스러워집니다. 보통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1학년 2학기 무렵부터 독서록(그림으로 그리기) 숙제를 내주기 시작하는데요, 아이가 글을 알기 전부터 그림 독서록을 쓴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작성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하세요>>

내 아이의 첫 독서록, 그림 독서록으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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