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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Apr 17. 2024

쉿, 아이가 독서록을 쓰기 시작하면 창작중인 거에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초등독서 로드맵(16)

쉿, 아이가 독서록을 쓰기 시작하면 창작중인 거에요!



초등학생이 된 내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할 때 종종 주위에서 ‘우리 애는 지금까지 몇 천 권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형제가 있는 집의 아이이거나 일찍 한글을 깨친 아이가 얇은 책을 하루에 열 권, 스무 권씩 읽는 사례인데요, 엄마 아빠는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 애는 겨우 한두 권 읽는데...’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들이 책을 읽는 대신 글자만 읽은 것은 아닐까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초등 저학년은 아직 문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 책을 온전히 소화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 것은 추천하지만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양치기식 책읽기’는 자칫 아이가 쉽게 책 읽는 즐거움을 놓칠 수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은 하루 한두 권 정도만 읽어도 괜찮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일주일에 열 권이상이 될테니까요. 저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 보다는 오히려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읽었는가에 관심두기를 권합니다. 그럼 초등 저학년 내 아이의 책 읽기는 어떤 방법으로 읽는 것이 제대로 읽는 것일까요? 





우선 아이가 다 읽었다고 책을 덮으면 읽은 책에 대해 엄마 아빠와 함께 짧은 대화하기를 추천합니다. 긴 시간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딱히 대화 방법도 필요 없습니다. 읽은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이 대화 시간을 통해 아이는 읽은 책에 대한 줄거리를 다시 떠올리면서 기억력이 좋아집니다. 또한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력도 키워집니다. 


아이와 대화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이가 읽은 책을 엄마 아빠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아이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알아야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초등 저학년이 읽는 책은 비교적 우선 분량이 적고, 큰 활자인데다 쉬운 내용이라 대화에 앞서 얼른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를 알고, 어떤 마무리인지를 알면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잘 이뤄집니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워낙 많이 봐서 익숙한 제목이라서 ‘내용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엄마 아빠가 책을 살펴보지 않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요, 아이는 몇 마디 대화를 하면 ‘엄마 아빠가 책을 읽었구나, 읽지 않았구나’ 금방 알아냅니다. 아이가 초등 2학년쯤 되면 ‘공정성’에 대한 개념을 알아서 “엄마 아빠는 이 책 읽지도 않았으면서, 왜 내게 묻느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제가 그랬다가 아이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거든요). ‘먼저 책을 읽는 건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대충이라도 꼭 읽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짧게 대화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책을 읽은 뒤 아이와 나누는 짧은 대화는 책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내고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생활 속에서는 나눌 수 없는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공부의 기초가 되는 자세와 습관을 기를 수 있고 나아가 토론의 기초도 만들어 줍니다. 


아이와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말은 ‘공감’입니다. 아이가 책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뭐라고 이야기하던 그 말에 맞장구를 쳐주세요. 그러면 아이는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아이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까먹거나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틀리게 말할 때 수정해 주는 건 ‘엄마 아빠도 읽었구나’하고 좋아할 겁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아이가 대화를 하면서 ‘엄마 아빠한테 책 이야기를 설명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야지 ‘엄마 아빠한테 배운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됩니다. 특히 ‘엄마 아빠한테 지적당한다’고 느낀다면 이런 대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겁니다.






초등 1학년 2학기 무렵 수업시간에 받아쓰기를 할 때가 되면 학교에서 일기 쓰기와 독서록 숙제를 내줍니다. 최근 들어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초등생들이 많아 학부모의 성화에 ‘일기와 독서록 숙제’가 없는 초등학교도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숙제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책을 읽은 내 아이가 ‘독서록 쓰기’를 하기에 좋은 때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초등 저학년의 독서록은 그림 독서록부터 시작하는데요, 아이가 일주일 동안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라(아이가 직접 고르기를 추천합니다) 쓰면 됩니다. 물론 아이가 일주일에 한 개 이상 독서록을 쓰고 싶다면 말려야 할 이유는 없죠. 하지만 엄마 아빠가 먼저 나서서 책을 읽을 때 마다 아이에게 독서록을 쓰라고 한다면 아이는 글을 쓰기도 전에 질려버릴지도 모릅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그런 부담으로 책읽기마저 거부할지 모르니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의 책읽기는 한글을 깨쳤을 때부터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직접 쓰기 시작하니까요. 아이가 글을 알기 전부터 그림 독서록을 썼다면 큰 무리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그림 독서록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책 표지나 아이가 그리고 싶어 하는 책 속 삽화를 그리면 됩니다. 크레용이나 색연필로 그리던 물감을 사용하던 그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한다’는 겁니다. 아이가 그림을 다 그렸다고 하면 아래에 책을 읽은 느낌을 적게 하세요. 


아이가 쓰는 소감은 단 한 문장이라도 상관없어요. 맞춤법을 틀려도, 글씨가 삐뚤빼뚤 해도 뭐라고 하지 마세요. 고쳐주지 않아도 됩니다. 독서록을 쓰는 시간은 아이가 ‘책 읽고 나 후 느낌을 적는 시간’이니까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내 글을 쓰는 ‘창작의 시간’인 거죠. 거기에 뭔가를 더 하려고 부모가 노력하면 아이의 ‘창작’은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독서록을 쓰는 행위가 부모에게 지적당하고 혼나는 시간이 되면 독서록 쓰기가 싫어지고 그러면 이후의 ‘독서록 쓰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책 읽고 독서록 쓰기’는 마치 실과 바늘 같은 관계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독서활동에 누군가 감시하고 지적한다면 그건 숙제가 되고 일이 되고 맙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이 글쓰기는 아이가 책을 꾸준히 읽어 나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아이의 독서록이 하나씩 늘어가면 머지않아 자신의 독서활동에 대해 놀랄 때가 옵니다. 독서록 노트에 남긴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스스로 놀라는 겁니다. “엄마 아빠, 내가 이렇게 많이 읽었어!” 하고 아이가 말할 겁니다. 아이의 말 속에는 스스로 대견스러워하고 있단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독서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면 나중에는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자연스럽게 독서록을 쓰기 위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아이가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는 첫 번째 단계를 넘고, 그림을 그려 책 읽은 느낌을 표현하는 두 번째 단계를 넘었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글쓰기 실력은 단계를 거듭할수록 놀랍게 변할 겁니다. 


많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접근하면서 두려움을 가집니다. ‘내가 과연 내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고 머뭇거리는 거죠. 아이를 가르치면서도 그 두려움은 떠나질 않습니다. 급기야 “나는 자신 없어, 못하겠어!” 라며 포기하고 결국 괜찮다는 학원을 알아보게 되죠. 엄마 아빠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 아이는 실험용 쥐가 아니라고. 내가 만약 잘못 가르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제대로 공부해야 할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두려움을 덜기 위해 학원에 보내고 돈으로 떼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연 내가 보내려고 하는 학원이 과연 아이의 책읽기와 글쓰기에 있어 적절한 해답인가?’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면 ‘학원만이 길이다!’라는 판단이 서질 않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온갖 사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련해서는 학원에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강의 몇 번에 실력이 ‘확~’ 하고 늘어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 방식에 있어 정답은 없습니다. 아이가 즐겁게 책을 읽게 만들고 꾸준히 읽도록 아이에게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가 즐겁게 책을 읽을 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자기만의 읽는 방식과 관점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아이의 책읽기에 있어 학원은 답이 아닙니다.





<로렌조 오일>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화목한 가정에 어느 날 어두운 그림자가 덮쳤습니다. 잘 자라던 어린 아들 로렌조가 ALD(부신 대뇌백질 위축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린 겁니다. ALD는 신경중추들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앞을 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다가 결국 전신마비로 죽음을 맞이하는 치명적인 병인데요, 더 절망스러운 건 이 세상에 치료약이 없다는 겁니다. 


아이의 암울한 미래를 알고 있는 엄마 아빠는 있지도 않은 치료약이 나타날 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 후 아들에게 찾아온 불청객을 물리치기 위해 관련 의학서적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고 연구한 로렌조의 엄마 아빠는 마침내 아이를 위한 치료법을 발견하고, 그 덕분에 아이는 병을 물리치고 건강해졌습니다. ‘내 아이를 위한 엄마 아빠의 노력’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저 역시 아이의 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 마다 이 영화를 기억합니다.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할 때 유독 ‘이 선택이 과연 옳은가’ 하고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해 노력해야 순간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 두려움을 남에게 외주를 준다고 해서 결코 완벽하게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내 아이의 책 읽기를 도와주기 힘들다면 먼저 배우고 익히면 됩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동기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20년 가까이 수천 권의 북리뷰를 쓰고, 책을 여러 권 냈던 작가이기도 한 저였지만 ‘소중한 내 아이’의 책읽기를 도와주는 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동서고금의 어린이 독서에 관련되 200권 가까운 책을 모두 찾아 읽고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 시기에 따라 가장 쉽고 편한 책 읽기 방법과 글쓰기 방법을 찾아 내 아이에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때 마다 두렵고 힘들었지만,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책읽기를 정말 싫어하던 제 아이는 올해 초등 5학년이 된 지금 200페이지 남짓한 책을 뚝딱 읽고, 독서록도 척척 쓸 만큼 책읽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도 그렇게 될 거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기억하세요>>

아이가 독서록을 쓰기 시작하면 나만의 창조적인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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