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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창업으로 이끈 한 권의 책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07

by 리치보이 richboy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08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08

1부. 후천적 활자 중독자, 당신도 가능하다



7. 나를 창업으로 이끈 한 권의 책



나는 독서 덕분에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1997년 말 IMF 외환위기사태가 터졌다. 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더 많은 직장인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지금을 두고도 사람들은 '최악의 불황'이라 말을 하지만 당시는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서울 시내의 산마다 양복에 구두 신은 등산객이 즐비했고, 공원에는 멍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시기에 졸업 후 사회에 내던져진 젊은이들에게는 오죽했을까.


취업을 하지 못한 나도 그 대열에 끼었다. 매일 수십수백 개의 기업이 넘어지는 동안 나는 백수로 빈둥거렸다. 거의 일 년 동안 허송세월을 하던 나는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거처를 옮겨 상가 분양 일을 하던 대학 선배의 학교 옆 자취방에 머물렀다. 선배에게 취업도 부탁할 겸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해주며 얹혀 지내면서 이른바 ‘기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돈 없는 백수에게 쇠털같이 많은 시간은 무거운 짐이었다. 궁리 끝에 찾아간 곳은 서점, 나 같은 백수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기왕 책을 읽을 바에는 책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자는 생각에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다녔다. 매일 아침 왕복 지하철비와 사발면 하나에 김밥 한 줄 사 먹을 돈을 들고 집을 나섰다.


월급만 안 받았지 교보문고 직원들만큼 오랜 시간을 서점에서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인사를 나눌 만큼 안면을 튼 직원도 있었다. 한 달쯤 교보문고로 출퇴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서가를 뒤질 때였다. 경제경영 코너에서 <비즈니스에는 급소가 있다>(천지서관)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도 흥미로웠지만 저자 소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 맥도널드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후지타 덴(이 사람은 어린 손정의가 쿠루메 대학 부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을 갈 때 결정적인 조언을 한 멘토이기도 하다)이 쓴 책이었다. 일전에 한국에 피자헛을 들여와 큰 성공을 거두었던 성신제의 자서전 <창업자금 칠만 이천 원>(여성신문사)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아예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아 책을 읽어나갔다. 평소 즐겨먹는 피자와 햄버거를 만드는 회사의 이야기라 친근하고 재미있었다. 알고 보니 후지타 덴은 대단한 장사꾼이었다.


후지타 덴은 일본 맥도널드의 전 회장이자 일본에 맥도널드를 들여와 패스트푸드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긴자의 유태인’이라는 별명답게 사업 수완이 뛰어났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일본에 맥도널드를 들여오기로 결정할 때 ‘전 세계에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맥도널드의 표준화된 시스템과 신속함’을 맥도널드만의 아이덴티티로 꼽았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성공하는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라”라고 말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등줄기로 쩌릿쩌릿한 전기가 흘렀다. “바로 이거다!”


그때의 느낌은 모르긴 몰라도 리자청이 우연히 들춰본 잡지에서 플라스틱 꽃 사진을 봤을 때 느꼈던 전율과 흡사하지 않을까. 나는 이 한 문장을 읽고 거짓말처럼 앞으로 내가 할 사업거리를 떠올렸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아이템을 가진 요릿집을 떠올린 것이다. 바로 내가 졸업한 건국대학교 후문에 있는 ‘춘천골 닭갈비’라는 이름의 닭갈비집이었다. 독특한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했는데, 하루에 쌀 세 가마를 소화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룬 맛집이었다. 내가 복학생이 되던 봄에 문을 열었는데, 나는 거의 매일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했다. IMF라는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한다면 이곳의 맛과 가격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고, 따라서 프랜차이즈로 확장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후 나는 한 달이 넘도록 교보문고에서 창업 관련 서적을 뒤졌다. 우선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들이 쓴 자서전을 찾아 읽었다. 특히 프랜차이즈 업체의 창업자가 쓴 책은 두세 번 읽으며 메모했다. 68세의 나이에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지금의 KFC)을 세운 컨넬 샌더스 대령의 감동적인 성공스토리를 비롯하여,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사업권을 인수받아 세계적인 글로벌 체인 맥도널드를 탄생시킨 레이 크록의 이야기도 읽었다. 훗날 하워드 슐츠는 레이 크록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스타벅스를 인수할 때 롤모델로 삼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직원 존중 경영 방식은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은근히 닮았으며, 혼다를 일으킨 혼다 소이치로의 카리스마는 난세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를 연상케 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모두 프랜차이즈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과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아이덴티티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프랜차이즈가 막 태동하던 시기라 국내 출판계에는 이렇다 할 창업 관련서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 싶으면 모두 읽었다.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CVS 사업, 즉 편의점 사업에 관련된 책들도 찾아서 공부했다. 심지어 LG25, BBQ치킨 등 다양한 업종들이 막 시작한 가맹사업설명회에도 찾아가 입지 선정 노하우와 가맹점 모집, 그리고 계약서 관련 서식과 내용 등을 벤치마킹했다. 이렇듯 모두 70여 권 정도를 탐독하면서 프랜차이즈의 이론과 성공사례들을 메모해 두었더니 서서히 전체적인 사업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책 한 권 분량의 자료와 기획안을 들고 학교 후문 뒤 닭갈비집을 찾아가 사장님을 만나서 다짜고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10분 정도 내 말을 듣던 사장님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장님이 서슴지 않고 오케이를 한 데는 개인적인 사정도 한몫했다. 닭갈비 장사가 잘 되자 시골에서 농사짓던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사정하는 통에 본의 아니게 경기 지역에 3개의 분점을 차린 상황이었다. 문제는 분점 관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 사장님은 지점 관리에 쩔쩔 매고 있었고, 그러던 차였으니 나의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쨌든 나는 그 자리에서 채용되었다.


이후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본점과 가까운 구의동에 사무실을 얻어 체인본부를 세운 뒤, 대기업 취업과 동시에 사직서를 내고 놀고 있던 대학 선후배들을 설득해 한 배를 탔다. 첫 월급은 딱 백만 원. 회사가 성장하면 급여를 올리기로 약속했다. 5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수입 하나 올리지 못한 서너 명의 직원들에게 기본급 백만 원은 큰돈이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사장님으로서는 엄청난 투자가 아닐 수 없었다.


가맹점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나의 책 읽기는 계속되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문제가 발생하면 퇴근 후 서점에 들렀다. 물론 백수 시절처럼 더 이상 다리 아프게 서점에서 무료 독서를 즐길 필요 없이 필요한 책이다 싶으면 구입 후 집으로 가져와 밤을 새워 읽고 회사에 청구했다. 나는 그 시절 책을 마음껏 사서 읽을 수 있다는 것, 내 맘대로 밑줄 치고 접어서 표시할 수 있는 ‘내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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