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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민의 답, 책 속에 있었다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08

by 리치보이 richboy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09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09

1부. 후천적 활자 중독자, 당신도 가능하다



8. 내 고민의 답, 책 속에 있었다



정말이다. 회사 업무를 보다가 난관에 부딪히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나는 우선 책을 찾아 그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찾고자 했던 답을 용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금고 비밀번호처럼 딱 필요한 정답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답을 찾으려는 목적을 갖고 이 책 저 책 매달리다 보면 해답으로 이끌어주는 힌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치가 점점 쌓이자 책에서 배운 내용을 모티브로 스스로 답을 만들어나가는 능력도 생겼다.


가맹점 개설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경영 전반, 즉 홍보, 마케팅, 계약, 협상, 설득, 매뉴얼, 고객응대요령 등 거의 모든 것을 책 속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맹점 운영 방법은 맥도널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이 쓴 자서전에서 알게 된 맥도널드의 햄버거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벤치마킹했다. 미국에서 맥도널드의 점주가 되려면 맥도널드 본사에서 설립한 햄버거 대학에 들어가 1년간 맥도널드에 대해 공부해야 비로소 가맹점을 낼 수 있었다. 나는 맥도널드의 햄버거 대학 시스템의 핵심이 매장 운영 노하우를 가르치는 데 있다고 보고, 예비 가맹점주들이 가맹점 계약과 동시에 기존에 운영 중인 가맹점에서 무보수로 일을 하면서 장사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홍보를 할 때도 독서의 도움이 컸다. 회사를 차린 지 6개월이 지나자 가맹점 모집 계획에 대한 틀이 거의 완성되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준비한 춘천골 닭갈비를 세상에 알릴까?’가 새로운 화두였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광고이다. 일간지 신문 하단에 가맹점 모집 광고를 내고 전화통 앞에서 기다리면 끝이다. 하지만 당시 일간지 신문에 5단짜리 광고 하나를 내려면 최소 300만 원에서 800만 원이 들었다. 우리 같은 회사로서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돈 들이지 않고 널리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며 또다시 서점을 찾아 책을 뒤졌다. 두어 시간 정도 뒤졌을까. 일본의 경제경영 전문작가인 혼다 켄의 어느 책을 살펴보다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만났다. 일본의 조그마한 부동산 회사가 광고를 할 여력이 없자 설문을 통해 지역 주민 실태를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가지고 보도 자료를 만들어 신문사에 보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회사를 크게 알렸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이거다!’ 무릎을 쳤다.

다음 날 아침 플래카드 하나를 제작해 춘천골 닭갈비 체인점 가운데 일본인이 가장 즐겨 찾는 문정점으로 달려갔다. 그날 저녁부터 일본인을 대상으로 무료 시식행사를 열었다.


책을 읽고 생각해 낸 기획인즉 이렇다. 1999년 당시만 해도 일본인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경제신문에서 정반대의 기사를 읽었는데 일본에서 멕시칸 요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콤 달콤한 칠리소스가 입맛을 당긴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기자는 ‘이제 일본인도 매운맛이 뭔지 알기 시작했다’고 논평을 달았다. 스크랩해 놓은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칠리소스를 맛있게 먹는 사람이라면 우리 닭갈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달고 매운맛을 서너 단계로 나눈 닭갈비를 준비한 다음, 문정동에서 쇼핑하는 일본 관광객을 초대해 맥주 500CC 한 잔과 닭갈비를 무료로 시식하게 하고, 대신 일본어로 적은 간단한 설문과 맛을 본 소감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반응은 의외로 괜찮았다. 처음 보는 새빨간 닭요리에 대한 거부감과 여전히 매운맛에 익숙지 못한 점을 제외하면 많은 채소들과 함께 볶아내는 매콤 달콤한 닭갈비 맛이 꽤 끌린다는 답변이 많았다.


설문자료가 공신력을 지니려면 조사 자료가 많을수록 좋다. 나는 거의 한 달 동안 문정점으로 출퇴근했고, 일본어 통역자를 직원을 채용하여 업무를 거들도록 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자 약 300장의 설문지가 작성되었다.

나는 이 설문 결과를 분석해서 보도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조선일보사 건물에 있는 일본 마이니치신문 한국지사를 찾아가 지국장을 만났다.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 다짜고짜 찾아와 닭갈비집 이야기로 기사를 내달라니 어이가 없는 듯 처음에는 웃으며 ‘우리는 이런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갔더니 이제는 바쁘다며 아예 만나주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 신문사 지국장들은 주로 정치부 기자다. 특히 청와대 출입기자이기도 해서 툭하면 외근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가 지국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국장은 어떤 날은 출장을 갔고, 어떤 날은 기사를 쓰느라 바빴다. 하지만 난 매일 그 시간, 같은 자리에서 1시간을 기다리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렇게 한 달이 되자, 지국장이 날 불렀다. 그는 능숙한 한국말로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난 솔직히 닭갈비에는 관심이 없고, 젊은이가 궁금해졌어. 당신은 어떤 사람이요?”


본의 아니게 나는 지국장에게 인터뷰를 당했고(?) 며칠 후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IMF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한국 젊은이’라는 내용으로 나에 대한 기사가 칼럼 형식으로 실렸다. 지국장은 끝내 닭갈비 기사는 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맙게도 우리의 보도 자료를 일본 야끼니쿠(焼き肉) 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릴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정말로 일본 야끼니쿠 협회에서 직접 한국을 방문해 춘천골 닭갈비 문정점을 취재해 갔고, 곧이어 NHK와 후지 TV 등 일본 방송매체와 언론에서도 찾아와 닭갈비를 맛있게 먹는 일본 관광객들을 카메라에 담아 갔다. 취재진은 방송으로 일본에 닭갈비가 알려진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 닭갈비가 알려지자, 역으로 한국에 있는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우리 닭갈비 회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IMF로 명예퇴직한 회사원들이 퇴직금으로 창업을 하던 시절이라 ‘값싸고 영양 많은 닭갈비’는 ‘창업하기 딱 좋은 아이템’으로 소개되었다.


그 후 한 달 사이 우리 회사는 4대 일간지와 경제신문에 모두 기사로 실렸고, 심지어 우리 사장님은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해 주병진 씨와 함께 현란한 ‘닭갈비 요리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후 순풍에 돛 단 듯 사업이 번창해 1년 반 동안 서울 경기지역에 체인점을 68개나 내면서 꽤 유명한 닭갈비 체인점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책을 읽고 배웠다지만 내가 마이니치신문사를 한 달 동안 찾아간 일은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용기를 나는 독서를 통해 얻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자가 쓴 어느 책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만났다.


“신문 기자도 사람이다. 그래서 형식적인 보도 자료보다 생생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나면 어떻게든 쓰려고 노력한다. 기사가 갖는 힘을 알아서인지 가끔 자기들 업체가 기사화되기를 원해서 보도 자료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이들이 때로는 답답할 때가 있다. 신문사 팩스로 날아드는 똑같은 형식의 보도 자료는 하루에도 수십 개가 넘는다. 나라면 판에 박힌 형식의 보도 자료를 팩스로 보낼 것이 아니라 생생한 소식이 담긴 쓸 만한 보도 자료를 만들어 직접 기자를 찾아가 설명하겠다. 누군가 이렇게 나를 찾는다면 나는 틀림없이 실어줄 것 같다. 이 방법은 결정적일 때 딱 한 번은 써먹을 만한 방법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그렇다, 기자도 사람이다. 보도 자료가 진실하고 독자들에게 유익하다면 그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이렇게 좋은 소식이라면 기자로서 사명감을 느끼고 전국에 알려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손정의나 리자청처럼 사업에 성공해 큰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책에서 만난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나름의 성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중한 경험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도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경제경영서를 열심히 읽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고, 블로그와 방송, 강의와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이로움을 널리 알리려고 하는 이유도 독자들이 독서를 통해 보다 멋진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책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이 귀를 열고 들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말이다. 오늘 밤 내가 잠 못 들며 미치도록 궁금해하는 모든 진실을 책은 알고 있다. 책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책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라. 그게 귀로 읽는 책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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