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심오한 일과 감정에는 침묵이 선행되고 수반된다." - 허먼 멜빌
우리가 만든 이 변화, 부모가 되기로 한 이 결정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마치 갑자기 강타한 거대한 허리케인에 흽쓸린 것 같다. 집은 엉망이고 일정은 빡빡하다. 잠을 풀 잘 수도 없고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차분하고 조용한 어둠조차도 레고를 밟은 당신의 비명으로 깨져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임무를 잘 해내려면, 부모의 임무를 잘 해내려면 우리는 반드시 고요함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회복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평온함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더 성찰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요함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요함은 고작 2주라는 짧은 휴가나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찰나에는 없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고요함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이 울거나 사춘기 자녀들이 다투는 환경에서 이런 고요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다면 말이다. 집안이 개어나기 전 이른 아침이나 아이들이 잠든 후 귀한 몇 분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고요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고요함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그 순간에 정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 기회를 휴대폰이나 넷플릭스를 보며 날려선 안 된다.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학교에서 차까지 혹은 차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고요함을 만끽하자. 이런 순간을 마음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하라.
고요함을 찾자. 많은 것이 고요함에 달려 있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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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자발적 고독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것이다. 혼자 있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치 죽은 듯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홀로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발적 고독'은 쉬운 듯 쉽지 않다.
외로움과 고독은 극과 극처럼 다르다. 우선 단어 자체가 다른 뜻이다. 외로움은 누가 꼭 필요한 상태, 즉 lonely 이고, 고독은 누군가가 필요없는 상태, 즉 solitude 이다. 외관으로 볼 때 외로움이 눈처짐이라면, 고독은 눈깔에 힘 들어감이랄까? 전에 이야기 한 바 있지만 노후를 행복하려면 '고독력'이 필요하다.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 정도가 될텐데 혼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그런 능력과는 다르다. 혼자 있어도, 혼자 살아도 아무렇지 않게 마음잡고 끌고 가는 능력 정도 될 것이다.
혼자 사는 내 친구는 식사하기를 '순대를 채운다'라고 부른다. 무엇을 먹든 배부르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일텐데, 듣기 거북함을 넘어 처량해 보인다. 이 친구는 고독력이 낮은 편이다. 밥을 먹는 것 뿐 아니라 잠도 졸려야 자고,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 그는 나를 모르겠지만 - 한 인물은 고독력이 높은 사람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바쁘고 강연을 많이 하기로 알려졌던 인물, 바로 김정운 교수다. 최고로 바쁘던 어느 날 김교수가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일갈을 듣는다. "하루 죙일 토하듯 떠들기만 하면 언제 배우고 담느냐?"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은 그는 그 한 마디에 대오각성을 한다. 그리고 한달에 억대를 넘던 수입을 모두 그만 두고 홀연히 미뤄뒀던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교토의 어느 미술학교를 다니며 홀로 자취생활을 하며 동경했던 그림을 그렸다.
삼년 여의 공부를 하고 귀국한 뒤에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그의 힛트작품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이다 - 전남 여수의 어느 섬에 들어가 미역을 저장 하던 어느 창고를 개조해 거기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홀로 지내고 있다. 그가 최근 펴낸 책들은 전에 썼던 작품들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책들이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에 청년같은 생기가 흐른다. 눈은 더 또렷해졌고, 목소리도 예전을 뛰어넘는다. 다시 젊어진 그를 보면서 회춘 이상의 기운을 느낀다. 이런 게 고독력이 아닐까. 혼자 잠을 자고 혼자 밥을 해 먹고 혼자 외식을 해도, 하루 종일 혼자 지내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심적 동요가 없을 때 '고독력이 키워졌다'고 할 만한다.
이러한 고독력은 남자들에게는 소수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지만, 여성 대부분은 갖고 있는 평범한 능력이다. 남자들이 외로워서 일찍 죽고, 여자들이 천수를 누리다가 가는 것도 이 덕분이다. 그렇다면 고독력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의외로 간단하다. '나와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으면' 고독력은 자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와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담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대화, 차라리 수다라고 하자. 여자들은 수다의 달인이다. 옛날 우리 아버지 때 아재개그 중에 여자들이 수염이 나지 않는 건 하도 떠들어서 수염이 날 틈이 없어서라고 했다마는,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말의 논리대로 라면 남자들은 죽어서 자라는 것 수염 뿐이더라..가 아닐까. 여자들은 잘 뭉치는 편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남을 만나 이야기하며 논다마는, 남자들은 기껏해야 저녁 술자리 뿐이다. 그리고 상대가 말이 많아지면 돌아오는 답은 이거다. "너, 돈 필요하냐?"
그러니 대화가 길어질 수가 없다.
고독력은 자녀를 키우는 데에도 빛을 발한다. 내 아이의 외관만 보고는 판단 할 수 없다. 아이가 말하는 형식과 말투, 심지어 뉘앙스까지 살펴야 아이의 현재 심리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러려면 아이가 없는 밤이나 아침에 복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내 아이니까 누구보다 더 잘 알아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제 아무리 자식이라도 '척 보면~ 압니다'는 식으로 아이를 보는 건 곤란하다.
특히 아이가 점점 자라 사춘기 엇비스한 시기가 되면 아이는 대화 속에 뼈가 생기면서 점점 깊어지는데, 부모는 '변했다'과 광분하기만 하면 대화가 끊어지고 그 공허함을 친구들과 나누면서 섯부른 판단이 더해지고 그러면서 사춘기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독력을 키우자. 온전히 혼자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서 나 스스로를 만나보자. 처음에는 보는 것만해도 다행이다. 시간을 점점 길러서 대화해 보자. 결코 쉽지 않다. 두어달 전부터 책을 읽고, 좋은 글과 문장을 찾아 필사를 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더해가는 것은 이러한 고독력과 상관이 있다.
스스로 발제해서 만들지 못하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의 글을 생각의 핑계로 삼아 내 생각을 늘어놓으며 '나를 볼 수 있어서'다. 공부하느라 지극히 단순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힘들어 이 방법을 택했는데, 의외로 정신도 맑아지고 공부도 더 잘 되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공부도 <공부일기>라고 해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면서 '내 공부를 뒤돌아본다'는 식으로 쓴 건데, 이를 더 발전시켜 합격한 후에는 이걸 토대로 책을 내 볼 생각이다.
여튼, 친구들도 혼자만의 시간을 매일 가지면서 생각이란 걸 정리해 보기를. 내 마음을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는가. 특히 자녀를 두고 있다면 자녀를 관찰만 할 것이 아니라 면면을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자녀는 나와 배우자의 딱 반씩 섞인 동물이다. 그렇다 보니 배우자와 잘만 이야기가 된다면 자녀 읽어내기는 시간문제다. 그럴려면 배우자와의 관계도 개선이 되어야겠지만. 이렇듯 하나 둘식 실마리를 풀다 보면 내게 쌓인 숙제들을 풀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난 그렇더라마는, 친구는 모르겠다. 하지만 해 보긴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