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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괜찮은 칼춤

by 리치보이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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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이 성경을 놓지 않고 불자들이 불경을 외운다.

종교가 없는 나는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아 어른 삼아 쫓고 있다. 톨스토이 할아버지는 내가 죽도록 아팠을 때 입원실에 있던 나를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준 어른이다. 그의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내게 톨스토이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준 책이었다. 나중에 병을 떨치고 다시 세상에 나올 때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구상한 것이었다.

내게 여러므로 삶의 지평이 되는 이 책이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었다. 그런 까닭에 나를 뒤흔드는 대목을 필사하는 것이다.


책의 구성이 묘하게도 이번 탄핵의 흐름과 놀랍도록 맞아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다잡는데 주효한 책이었다. 이번 글은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탄핵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다. 100년도 전에 쓴 글인데도 이번 일을 예견한 듯 쓴 글을 보면 인간의 삶 속에 늘 있을 법한 복수를 경계하고 있다.


총과 칼, 그리고 무장된 군인으로 정적들을 말살하려 했던 - 이 내용은 헌재가 인용한 대목을 압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이렇게 언급해도 이제는 마음의 부담이 없단 뜻이다 - 자들에게 복수는 더 큰 총과 칼, 그리고 중무장한 군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복수는 거둬라' 고 말한다. 처음 이 대목을 읽으면서 '턱 없는 소리 말라'는 식의 뭔가가 불뚝올라 왔지만 '악이 더 커질 뿐'이라는 말에 침착해진다. 더 이상의 공포는, '오~ 노우'.


승리한 우리 중 복수를 외칠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국회에 군인이 쳐들어왔을 때, 숱한 날을 광장에서 밤을 보냈을 때 난리가 나도 났을 것이다. 우리가 지난 겨울을 보낸 스토리들은 너무나 잘 짜여진 소설 같아서 너무나 그럴 리가 없어서 영화로도 제작될 수 없을 만큼이다. 그런 우리가 복수를 이야기할까.


다만, 헌법을 무너뜨린자 헌법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났듯, 법을 우롱한 자들을 법에 의해 단죄해야 하는 건 복수가 아니다. 말 그대로 '법치'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명도 예외없이(여기에 빨간펜 밑줄 쫙쫙!!) 죄를 밝혀야 할 것이고 법에 적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법에 딱 맞는 양형대로 벌을 달게 받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죄를 지으면 예외없이 적발되고, 예외없이 처벌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어 더 이상 그런 죄를 꿈조차 꾸지 못할 테니까. 특히 이런 죄는 평범한 백성은 짓고 싶어도 짓지 못한다. 오히려 죄를 들춰내거나 단죄하는 자들이 짓는 죄이기 때문에 더욱 엄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할 때 문득 떠오르는 광경은 옛날 본 마당극에 암행어사가 출두하고 탐관오리들이 혼비백산을 하는데 흰옷입은 육각방망이를 든 역졸들이 뒤를 쫓는 모습인데, 뭐 이 정도면 저희들이 계획한 암살과 폭사, 작두와 도끼에 비하면 '썩 괜찮은 칼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를 두고 '팝콘각'이라 했던가.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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