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스트레이트는 엄마가 이사하는 것을 돕던 중 쓰레기통에 버려진 오래된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엄마가 구매하지는 않았다는 걸 직감한 그녀는 엄마에게 그림에 대해 물어보았다. 엄마는 "YMCA에서 그림 수업을 들었어. 그러다가 혼자서도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발견했지."라고 대답했다.
놀라움과 감동을 느낀 두 사람은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는 수전이 몰랐던 엄마의 비밀스러운 취미였을까? 엄마에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창의적인 면이 있었던 걸까? 엄마가 그린 다른 그림이 더 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림은 딱 한 점밖에 없었다. 엄마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 그림을 완성한 후에 너를 가졌어. 그리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 내 인생은 그때 끝났어."
가슴 아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다. 갑자기 집이 장난감과 기저귀로 넘쳐나고 우리의 일정이 카풀이나 축구연습으로 방해받을 때면 인생은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재미와 자유를 누리던 좋은 삶은 끝이라고 느껴진다. 취미활동을 할 시간도 없다. 자아실현은커녕 자기 탐색을 할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예사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금과 부담을 알게 되었다. 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부모가 디었다는 것을 핑계로 포기할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더 밀어붙어야 한다. 힘든 현실을 초월해야 한다.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관심사를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삶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시작된 것이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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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고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옥문을 열었다'고 느껴졌다. 넘쳐나는 빨래와 쓰레기, 하루 종일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로 엉망진창이 된 집 만큼이나 내 정신도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려서였다.
지옥에 갔다가 현생으로 돌아온 사람의 말을 들으니(물론 농담이다) 지옥은 똥물로 가득한 목욕탕으로 가득할 뿐, 불구덩이나 괴물들은 없더라 했다. '지옥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편한대?' 하며 코를 막고 똥물에 들어갔다고, 그리고 5분쯤 있었나?지옥을 지키는 파수꾼이 이러더란다. "10분 휴식 끝, 1년간 똥물에 잠수~~~"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일만 있을까. 하지만 아이를 얻은 기쁨은 지옥에서의 10분간 휴식에 불과했다.
인간은 최악을 경험하고 나면 왠만한 건 만만해진다. 아이 키우기가 그런 게 아닐까.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대화가 통하고 내 말을 듣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숨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점점 자랄수록 그런 시간들이 점점 늘어간다.
그 점에서 라이언의 조언대로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저귀값 때문에 포기했던 나의 취미도 기저귀를 떼면 다시 붙들어야 한단 소리다. 아이의 학원비 때문에 투잡을 뛰고 대리를 뛸망정 패션은 포기하지 말고, 좋아하는 신발은 신고 뛰어다닐 일이다. 나 역시 우리 부모에게는 금쪽 같은 새끼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나의 삶을 포기한다면 남은 60년은 뭐하고 살려고 하는가?
점점 늘어가는 근손실을 막기 위해 많이 줄넘기를 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플랭크를 해야 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걸어줘야 한다. 편한 신발 신발 신고 하루 기본 10,000 보는 채우고 잘 일이다. 머리가 굳으면 입이 굳고, 그 다음은 치매가 온다. 굳어가는 머리를 말랑해지게 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은 읽어줘야 한다. 소리내어 책을 읽는 것 만큼 좋은 치매예방 운동은 없다. 이렇게 몸이 건강해지고 머리가 깨어나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진다. 포기했던 것, 미뤄뒀던 것들을 시작하기를.
나는 죽을 때 까지 걷고 돈을 벌기 위해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직업과 연계해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부동산 전문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고, 아이의 국어공부를 가르치고, 매일 블로그에 글 두어 개씩을 쓰고 있다. 좋은 글을 찾아 읽으며 나의 생활과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준비를 하면서 하루 12,000보를 걷고, 아침에는 사과와 당근 그리고 산마를 넣은 쥬스를 300밀리 마시고, 점심엔 샐러드을 양푼으로 하나 먹는다. 밥은 저녁 한끼만 먹는다. 나는 이제껏 이렇게 살면 죽는 줄 알았는데 3년 째 해 오면서 죽지는 않고 살도 10킬로가 넘게 빠지고 더 건강해졌다. 얼굴이나 피부에 염증 하나 없는 걸 보면 장내유익균이 넘쳐나는 것 같다.
2년 전 유럽여행 때 체코 프라하 시내에서 만난 반가운 볼보 올드카의 차창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낡은 차라고 흉볼지 모르지만,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엔 흔하지 않은 빈티지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Oldies but Goodies한 빈티지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죽을 때까지 포기할 건, 아무것도 없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