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자들은 매순간 차분함과 평온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 붙잡기 힘든 자질들을 붙들 수 있을까?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할까? 아니면 고요와 고독을 향해 달려가야 할까?
둘 다 아니다. 평정심은 오직 판단력을 바로 세워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이성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왜곡되고 혼란스러운 외부의 사건을 바로잡아 그것에 일관된 질서를 부여한다.
이성이 부족하여 판단이 외곡되면 따라오는 모든 것이 왜곡되어 우리는 혼돈 속에 길을 잃고 만다. 외부 사건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언제나 명징하기를 원한다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데일리 필로소피,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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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넘쳐나고 그만큼 큰 목소리가 하루 종일 귀를 때린다. 이런 현실에 우리는 더 똑똑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내가 쫓는 생각은 알고리즘을 통해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는 또 다시 내 생각과 비슷한 말과 영상만 반복적으로 취하게 되면서 내 생각은 점점 편협해지고 시야도 좁아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만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점점 더 멀리 떨어지게 됨으로써 '생각의 차이'라는 골짜기는 더욱 깊어져만 간다.
한편 내가 내는 목소리가 과연 나의 진정한 목소리인지 수시로 의심해야 한다. 이른바 빅 스피커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앵무새'와 '원숭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 뿐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해 나를 살펴야 한다.
집값이 뛴다고 형편에 넘는 집을 사려 하고, 주가가 뛴다고 빚을 내 이자를 줘가면서 투자란 걸 한다. 유명인이 맛있다고 하면 꼭 가줘야 하는 '성지'가 되고, 나도 먹었노라고 셀카를 찍어 자랑해야 한다. 벌어들이는 건 100인데, 쓰는 데 120을 쓴다면 이른바 '마통(마이너스 통장)'이 있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평생 남으로부터 '돈 갚으라'는 소리를 듣고 살게 될 것이다. 스스로 빚쟁이가 되는 것은 제 발로 지옥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다름 없다.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욕망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따라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은 무엇인지, 무엇이 가장 나 다운 삶을 사는 것인지 수시로 스스로를 관찰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이성'이라고 한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