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가계부

머니 에세이(2) - 돈에 대한 최초의 기억

by 리치레몬


공무원으로 일하셨던 아빠와 전업 주부인 엄마 밑에서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형편에서 자랐다. 최소한 밥을 굶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많지 않은 아빠의 월급이 유일한 수입원이었을테니 엄마가 얼마나 빠듯하게 살림을 운영했을지는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빤한 수입에 식구는 많고, 서울 변두리지만 집 한 채 장만하기 위해서 엄마는 갖은 노력을 다하셨을 것이다.

아빠는 비싼 물건을 사거나 낭비와는 거리가 먼 소박한 삶을 사셨지만 그렇다고 구두쇠거나 무조건 아끼시는 편 아니었다. 그 시대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했듯이 월급을 몽땅 가져다주면, 일정 금액을 아빠 용돈으로 제하고 나머지는 엄마가 알아서 살림을 꾸리는 식이었다. 가장으로서 무거운 부양의 짐은 밖에서 아빠가 지고, 살림은 전적으로 엄마가 알아서하는 그런 방식이다.

엄마는 거의 매일 꼬박꼬박 가계부를 쓰셨던 것 같은데, 집안일을 잠시 쉬는 타이밍에 여성지나 주부지에서 연말 부록으로 주는 듯한 그런 두툼한 다이어리를 들여다 보며 기록을 하셨다. 약간의 현금을 가계부에 끼워두고 거기서 돈을 꺼내쓰기도 했던 것 같다. 가계부를 들여다보다 가끔은 한숨을 쉬시기도 했고, 쓰고 나서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하셨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곱 식구의 살림을 건사하느라, 그 시간이 엄마의 거의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겠지만 그 때의 나는 짬이 날 때 우리와 안 놀아주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 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의 나 또한 가끔 시간이 나면 혼자 있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하는 때가 있는데 문득 그 시절의 엄마 마음이 지금의 나 같았을까 싶다.



입이 많다 보니 식비도 많이 들었을테고, 따라서 엄마의 가계부 속 우선 순위 중 자신을 위한 투자나 쇼핑은 아예 리스트에 없었을 것이다. 식구들 먹거리를 위한 식재료를 사고, 할머니와 우리 4남매에게 용돈을 쥐어주고 나면 남는 돈이 있긴 했을까. 엄마를 위한 화장품이나 옷, 구두는 엄마에겐 분명 사치품이었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남을 잘 배려하고, 나쁘게 말하면 필요없는 부분까지 타인을 의식하는 성향의 나는 그에 걸맞게 어린 시절부터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가난하다고 하기에는 배부른 소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여유있는 형편도 아니었기에 금전적으로 뭔가 부담이 되는 일은 알아서 하지 않았다. 엄마는 돈 쓸 곳이 많으니까, 라고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학교에 아람단이라는 단체 활동이 생겼다 하기에 호기심에 설명회 비스무리한 것에 참석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한 가지. 집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해와야 정식으로 입단하게 되는 것인데 어느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 지 안내문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금액은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컸고, 나는 조용히 그 신청서를 버리는 방법을 선택하고 아예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중에 몇몇 친구들이 아람단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좋아보인다고 느꼈던 것 같긴 하나, 꼭 하고 싶었다거나 절실하게 원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나에게는 뭘 사달라거나 뭘 해달라고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조르거나 떼썼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아주 어릴 때야 과자를 사달라고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엄마 입장에서 보채고 요구하는 아이보다 키우기 백배는 쉬웠을 것이다.



어른스러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당시의 나는 약간의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같다. 다만 나도 다른 어린아이들처럼 졸라볼 것을,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 아쉬움이 오래 가게 될 것도 그 때는 물론 알지 못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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