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이 되다

머니 에세이(9) - 졸업 그리고 새로운 시작

by 리치레몬


짧은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 한 학기만 남았기 때문에 다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기 보다는 취업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학원을 다녔고 토익을 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입사 원서를 넣어보면서 마지막 학기를 보냈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선배들이 그리 힘들지 않게 대기업을 갔던 시절은, IMF를 겪고 이후 어려워진 경기로 이미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렸다. 별다른 기술도 없고 자격증도 없는 문과대생의 취업이 그리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1차 서류 통과를 하지 못해서 원서 접수만으로 그친 회사가 훨씬 많았지만 다행히 몇 군데서는 인터뷰를 보기도 했다. 대부분 큰 회사는 아니었고 중소기업이나 개인 회사처럼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그 중 삼성동 무역센터에 위치한 작은 무역회사에 합격했고, 연말이 되기 전에 첫 출근을 시작하였다. 10명이 넘었던가,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였는데 당시 나는 신입사원 입장이긴 했지만 회사 규모에 대한 아쉬움 외에는 그럭저럭 다닐 만 했던 괜찮은 직장이었다.


그런데 초봉이 높은 편은 아니었고, 외국과의 시차를 고려해야 하다 보니 근무시간도 상대적으로 좀 긴 편이었다. 아직 졸업까지도 3개월 여가 남은 터라 괜찮은 회사가 채용을 한다는 정보를 접하면 틈틈이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역회사 보다 연봉이 무려(!) 25%가 높은 특허법률사무소에 합격하였고 별다른 고민 없이 연말까지만 무역회사에 다니고 특허회사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한 달 남짓 근무했을 뿐이지만, 일을 가르쳐 주는 직속 선배나 그 위 차부장님들도 다 좋으셨고 워낙 가족 같은 분위기여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심하였다.


어렵게 말을 꺼내고 마무리를 했는데 여기서의 아쉬운 점은, 마지막 출근 날에 사장님에게 인사를 못 드린 것이었다. 직장 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12월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좀 일찍 퇴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중에 쭈삣쭈삣 인사를 하려고 보니 사장님과 사모님(부부가 운영하는 회사였음)이 안 계시네? 어쩔 수 없이 선임들께만 인사를 드렸고, 직속 선배는 전화 한 통 드리라고 했지만 실은 괜히 어렵고 죄송하게 느껴져서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회사 이름이 떠올라 검색해보니 회사도 이전하고 아직까지 건재하는 것 같다. 좋은 분들이었는데 다행이다. 몇 년이 지나 근처에 갔을 때 우연히 은행 ATM에서 그 회사 분을 봤는데 아는 척 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잘 지내시길 바란다.





한달 반 짧게 근무했던 첫 회사의 마무리를 하고 새해부터는 특허회사에 출근하였다. 연세가 좀 있는 소장님이 한 분 계시고(비하인드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변리사셨는데, 우리나라에 몇 없는 케이스라 당시 들었다) 그 밑에 변리사 여러 명이 있는 구조로 직원이 30-40명 정도 규모였던 것 같다.



해외 특허의 국내 출원 업무가 주를 이루는지라 해외 특허사무소와 영문 서신을 주고 받는 일이 내 주요 업무였다. 집에서 더 멀어졌다는 단점은 있으나 무엇보다 높은 연봉 - 당시 2400만원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쓰면 귀여울 수 있으나 당시 작은 회사의 초봉으로는 꽤 괜찮은 수준 - 그리고 야근 없는 칼퇴근이 가능한 회사라는 장점이 있었다.


정시 퇴근 문화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사람들이 6시가 되기 5분 전부터 컴퓨터를 끄고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시계가 정확히 6시를 가리키면 다들 문 앞에 줄을 서서 나가며 집에 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야말로 '워라밸의 원조'가 아니었다 싶다.



또한 여성 직원이 90% 이상이라는 특징까지 있었다. 업무 특성상 변리사 두어분과 총무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직원들이었고 많진 않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육아하며 직장을 다니는 분들도 몇몇 계셨다.


연초다 보니 나와 함께 채용된 동기 한 명이 더 있었고, 우리는 각자 선임에게 업무를 배웠는데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 준 선배는 회사를 그만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채용된 것이겠고)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만두는 것이니 선배는 회사와 소장님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렀고 여과없이 신입사원이자 후임인 나는 매일 그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뭐 거기까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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