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절약과 과소비 사이에서

머니 에세이(8) - 그래도 가슴이 아팠던 20대

by 리치레몬


대학교와 집 사이 거리가 꽤 멀고 통학 교통편도 불편한 편이었다. 30-40분에 한 대인 버스 시간에 따라 좀 다르지만 편도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렸다.



하루라도 학교에 가는 날을 줄이려고 되도록 주 4일 수업으로 시간표를 짰고, 과외 스케줄 또한 평일 중 2-3일 간에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과외를 하고 평균 이상의 학점을 낼 수 있도록 시험과 과제를 하면서 나름대로 분주하게 지냈다.



대학 시절 내내 과외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면서,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용돈을 내가 벌어서 쓴다는 것은 굉장히 매혹적인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숙식 제공에 등록금까지 내주셨으니 경제적 독립과는 거리가 멀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번 돈을 - 그 당시는 과외도 참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경험하게 되는 직장 생활에 비하면, 음..... - 참으로 알차게 소비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 쓰는 재미를 알았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힙한 레스토랑이 바로 TGI였는데 큰 마음 먹고 동생들을 데리고 가서 맛있는 점심을 쏘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데이트할 때도 즐겁게 썼다.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 비싸지 않은 노포스러운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즐겼고,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생일이 되면 각기 다른 그룹의 친구들과 최소 서너번의 생일 파티를 했던 것 같다.



과외 두 세개의 수입이 많다면 많겠지만 실상 쓰기로 하면 또 그다지 큰 금액도 아니었다. 내가 쓰는 옷, 화장품, 학과 책, 차비, 식비, 데이트 비용, 유흥비 등 학교 등록금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특별히 과소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절약에 노력하지 않았고 한 달 벌어서 한 달 쓰는 그런 개념으로 생활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끼려면 얼마든지 아낄 수 있었는데 그 때의 나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IMF가 터지고 취업이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4학년 2학기를 남기고 갑자기 휴학을 결심하게 된다.



딱히 뭔가 할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빨리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을텐데 취업을 위한 준비도 하지 않았으니 나도 겸사겸사 어학 연수를 가볼까 싶어서였다. 그 때부터는 원래 하던 것에 과외 수업 갯수를 더하여 은행 잔고를 늘리기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하게 되었다.






500만원인가, 600만원인가, 지금은 액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의 나로서는 나름대로 큰 금액을 가열차게 모아 드디어 몇 개월간 어학 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연수 또한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직접 벌어서 다녀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갸우뚱해진 것은 어학 연수에서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도 없었고, 현금을 몽땅 들고 가기가 염려스러워 항공료와 학원비를 내고 남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엄마에게 맡겼다. 한 달에 한 번씩 현지에서 써야 하는 용돈을 보내 달라고 부탁해둔 터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내 지출이 커져서이기도 하고, 원래 넉넉하지 않은 잔고였기에 마지막 한두달에는 바닥이 났다. 말씀드리기 죄송하긴 했지만 이전에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은연 중에 이 정도는 그냥 해주시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렵게 돈을 보내달라는 말을 꺼냈는데, 네 돈은 이미 다 보내고 없다며 수화기 너머로 짜증스러운 엄마의 말이 들려왔다.



하던 과외가 끊기면 이번에는 또 어떻게 구하나, 돈이 부족하면 벌면 되긴 하는데 만약 그 사이 가지고 있는 돈이 떨어지면 얘기를 해야 하나, 오늘은 하루에 과외 두 개 하는 날이니 저녁은 못 먹겠네, 오늘은 피곤하고 힘들긴 한데 그래도 과외는 가야지......



이곳저곳 인근으로, 또 모르는 동네로 4년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며 용돈을 벌기 위해 겪었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모으고 모아서 힘들게 거기까지 갔는데......






나도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이었고, 멀리 외국에서 용돈이 떨어지면 매번 그런 것도 아닌데 한두번은 그냥 보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집에서 용돈을 벌어서 쓴 아이는 나 혼자였고, 동생들은 매달 부모님께 타서 쓰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나한테만 너무 하신 것 아닌가.



아빠 월급은 빤하고 식구는 많고 대학생이 두셋이 되면 집이 힘들테니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렇게 살았는데, 큰딸이라 돈을 벌어쓰는 것은 어느 새 당연한 일이 되었구나...... 나는 용돈 한 번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룸메이트에게 아쉬운 대로 잠시 용돈을 빌려 쓰면서, 나는 마음으로 울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인가가 너무 시립고 서러웠다. 매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을 꼬박꼬박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To be continued...




https://brunch.co.kr/@richlemon/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