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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Jul 14. 2024

청소 여사님들과의 대화

직장에서 유축을 하던 기억


 회사가 위치한 빌딩은 제법 규모가 있는 편이어서 청소와 경비 인력을 별도로 관리하는 용역이 있다. 그중 나만큼이나 이 건물에서 오래 일하신 아주머니들도 많기에 몇 분은 얼굴을 알고, 같은 층에서 10년 넘게 일하신 여사님은 종종 소소한 선물도 챙겨 드렸던 사이였다.


 다른 한 아주머니는 수년 전 다른 층으로 가셨기에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분이다. 오래전 백일이 채 되지 않은 둘째 아들을 두고 이 회사에 경력으로 입사했을 때 같은 층에서 청소하시던 분인데, 작은 에피소드가 있어 그분도 나도 지금껏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백일된 아들이 모유를 아주 잘 먹고 좋아해서, 나는 힘들지만 직장에서 유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당시 회사가 막 커지는 단계여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 직원이 전무했기 때문에 유축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총무부서에 문의하여 다른 층에 있는 여직원 휴게실에서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몇 번 시도해 보니 바쁜 업무 일과 중에 유축기와 보냉백이 든 배낭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당시에는 수유 시간에 대한 개념도 없었기에, 어려운 남자 상사들에게 유축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도 불편했다.


 고민하다가 화장실 앞에 반 평은 될까 말까 하게 조그맣게 자리 잡은 청소 아주머니 전용 공간이 있어서 여쭤 보았다. 하루에 두어 번 십분 남짓 유축을 위해 잠시 공간을 사용해도 되겠냐고. 아주머니가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다른 층을 오가는 번거로움 없이 몇 달을 그렇게 유축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유축 횟수를 줄이고, 아들이 밤과 아침에만 수유를 해도 가능할 정도로 잘 조절이 되어서 직장 다니면서 하는 유축은 일 년 정도하고 마쳤던 것 같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청소 여사님들을 만났다. 약 14년 전, 유축을 하는 젊은 엄마였던 나를 기억하는 그 아주머니가 계셨다. 다른 아주머니들께 십수 년 전에 아기가 어려 유축한다고 고생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며 나를 소개하셨다.


리치레몬: 아주머니도 정말 오래 계셨네요. 그때 백일이었던 아들이 벌써 중2가 됐어요. 시간 정말 빠르네요.

아주머니: 벌써 그렇게 됐나요? 중2 엄마라니 어쩜 하나도 안 변하고 그렇게 똑같아요?

리치레몬: 하하,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도 똑같으세요.

아주머니: 애 키운다고 고생 많았는데 이제 좀 편하겠어요.

리치레몬: 네, 예전보다 몸은 확실히 편한데 아직 신경 쓸 것들은 꽤 있더라고요. 이제 곧 어른 되겠죠.


 좋은 하루 보내시라며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잊고 있던 오래된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며, 유축을 해야 하니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모유가 뿜어져 나와 옷을 적셔 엄청나게 당황했던 일, 그렇게 힘들게 유축해서 갔는데 랑이는 분유를 더 잘 먹는다며 투덜대는 어투로 번거롭다는 식으로 말했던 입주 아주머니, 유축하는 게 힘들다고 하니 뭐 하러 사서 그런 고생을 하냐고 했던 주변 사람들.


 아들이 17개월 되는 날, 모유수유를 떼기 위해 수유를 하지 않기로 한 그 밤. 입주 아주머니 방에서 젖을 달라고 밤새 울고 보채던 아이의 울음소리를 안방에서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억지로 잠을 청하던 기억도.


이제는 모두 잊고 사는 희미한 추억이 되었다.

애쓰고 또 애썼던 지난날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내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 젖을 찾던 아들은 엄마보다 더 키가 큰 사춘기 중학생이 되었다.



https://brunch.co.kr/@richlemon/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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