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 17>
인간을 유형별로 나누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별자리, 혈액형, 육십갑자에서 MBTI까지, 우리는 다양한 툴로 인간을 정의하려 한다. 이를 단순한 재미의 일환으로 볼 순 있지만, 한 명의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반증하기도 한다. 인간은 복잡하고 변덕스럽다. 우리가 스스로를 이리저리 정의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의 범위엔 ‘나’조차 포함하여 정리하고 싶어 할 것이다.
미키1이 타고난 기질이라면, 미키17과 미키18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한 성격일 것이다. 이승현1이 겪은 수많은 감정과 경험이 이승현2, 3, 그리고 그 이상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변동성은 타인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혼란을 준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라는 존재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 불확실성은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체성의 흔들림을 최소화하고자 치명적인 질문을 날린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혈액형은요?” 쉽다.
나는 오래전부터 타인에게 일관된 모습으로 비치길 원했다. 변화무쌍한 사람을 대하는 것은 피로한 일이다, 누군가 나를 바라볼 때 그런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무리 일관성을 유지하려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차분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뚝뚝하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을 통해 나는 이미 수많은 ‘나’로 프린트된 셈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미키17, 18보다 훨씬 많은 버전의 자신을 제작하고 있다. 프린트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모든 ‘나’들을 한데 모아 조율하는 자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일종의 총회 같은 것. 그렇게 내부적인 조율과 합의를 거듭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조금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최소한 타인이 나를 볼 때 ‘예측 가능한 사람’ 정도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과연 하나의 명확한 존재로 정의될 수 있을까? 아니면 끝없이 프린트되어 변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까? 중요한 건 ‘나’를 고정된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프린트를 이어가며 한계점을 마주해야 한다. 그때가 폭파시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