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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믿음, 현실적인 욕망

영화 <콘클라베>

by 이승현

사치의 범위를 단순한 과잉 소비보다 넓은 개념으로 본다면, 종교도 영적인 사치의 한 형태일 수 있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도, 가상의 행복이나 불행을 꿈꾸며 영혼을 소비한다. 사치스러운 활동에는 낭비가 수반된다. 낭비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그 비효율이 낭만을 만든다.


바티칸은 낭만의 집합체다. 압도적인 건축물과 예술, 정교한 의식, 축적된 역사와 유물 모두 사치와 낭만의 최고 레벨이다. 거대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성가, 기도, 탄성과 묵직한 침묵, 그리고 절제와 권위가 공존한다. 로렌스 추기경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의 숨소리와 현악기의 선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추기경들은 인간적인 욕망을 숨기면서도 동시에 드러낸다. 현실적인 공간이면서도 영화적인 공간, 리얼리티와 드라마의 경계에서 가장 적절한 무대다.


그런 곳에서도 야망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야망이 있다면, 그 야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 삶의 무게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큰 야망을 담을 그릇은 없다. 적어도, 그 편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선 유리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뜻밖의 성과가 있으면 웬 떡이냐 싶을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게, 활활 불타오르는 야망을 좇는 것보다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종종 야망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목적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는 삶이 주는 선명한 색채감, 그 에너지는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나대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더 익숙하다.


스크린으로 바라본 바티칸의 한가운데를 다시 걷고 싶다. 종교적 의미와는 별개로, 서방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세계의 메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넓은 범주에서 보면, 현시대의 헤게모니를 여전히 쥐고 있는 세력의 정신이 깃든 공간. 실제 메카는 무서워서 못 가도, 바티칸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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